▣ 그래도 애들 오면 큰 집이 필요하니까
아이들이 슬하를 떠나고 부부만 남은 5060세대가 여전히 큰 집을 붙잡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이 찾아오면 필요하니까’입니다. 우리 부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오면 방이 부족하지 않을까, 손주라도 생기면 좁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운사이징을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이들이 떠난 넓은 집에는 부부 둘만 덩그라니 남아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청소와 관리도 해가 갈수록 버거워졌습니다. 아들 녀석들이 함께 살던 시절에는 겨울에 큰 눈이 내려도 같이 치워줄 손들이 충분했는데, 이제는 시원찮은 허리와 오십견 어깨로 혼자서 눈을 치우려니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큰 집에 부부만 살고 있는 분들을 보면 현금은 별로 없고 집만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당장 쓸 수 있는 돈은 부족함에도 집만은 꼭 붙들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집 한 채만 믿고 지내다가 경제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던 일에도 마음이 쉽게 상하고 사소한 문제로 부부사이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우울감이 스며드는 것도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분가한 아이들이 결혼해서 손주가 생기고,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찾아 올 때 뛰어놀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필요하니 큰 집을 지켜야 한다”고요.
우리 부부에게는 아직 손주가 없지만, 콘도로 이사한 후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또한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듯합니다. 우선 잠잘 자리 문제는 변신용 소파 구비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고들 하셨습니다.
요즘은 좁은 공간에서도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스템 가구들이 다양하고 저렴하게 잘 나와 있는 시대입니다. 평소에는 거실 소파로 사용하다 아이들이 방문하면, 소파베드는 훌룡한 침대로 변신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소파베드를 보면 꿀렁거리고 허술한 것들이 많다 싶었는데, 지금은 소파가 아니라 침대로 주로 쓰더라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튼튼하고 편안하게 잘 나온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우리 콘도 단지 안에는 아이들이 뛰어 놀기 좋은 공간들도 있을 뿐더러, 수영장 같은 커뮤니티 시설도 있으니 손주들이 오히려 “할머니 집이 리조트 같다”며 더 좋아한다는 반전 섞인 후기도 들려 왔습니다.
물론 경제력적으로 충분히 여유가 있다면 큰 집을 유지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오면 혹시 필요하니까”라는 이유로 큰 집에 부부만 남아 있는 선택은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칫하면 ‘가난하게 살다가 부자로 죽는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돈은 집에 묶여 있고 통장 잔고가 바닥날까 두려워, 정작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할 소소한 지출조차 망설이며 은퇴기를 보내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요.
내가 살던 집값이 아무리 올라도 내가 죽고 나면 다른 사람이 살게 되고, 결국 재산이 아니라 ‘유산’이 될 뿐입니다.
그렇게 평생 모은 돈을 나를 위해 써 보지도 못한 채 고스란히 남기고 떠나는 일, 그것만큼 아쉬운 마침표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5060세대에게 다운사이징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는 진지하고도 중대한 화두인 것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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