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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 캐나다 선교사 앨리스 사프(사애리시)와 유관순 열사(3-5)

석동기 2026-03-0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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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충남 공주 영명학교 학생과 교사들의 단체 사진의 연구원 측은 앞에서 세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소녀가 유관순 열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맨 뒷줄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가 사애리시 선교사.]


앨리스 샤프(Alice J. Hammond Sharp 史愛理施, 사애리시1871.4.11~1972.9.8)는 1904년 공주에 첫 여성 학교인 명선학당(明善學堂, 永明女學校 전신)을 설립하고 주변 시골에도 몇 개의 학당을 시작한 공주 지역 여성 선교의 어머니이다. 


특히 영명여학교에서 유관순(柳寬順, 1902.12.16~1920.9.28)을 가르치며 이화학당으로 진학시킨 유관순의 양어머니로 알려져 있다.


앨리스는 1871년 4월 11일 캐나다 노바스코시아 Yarmouth의 Chebogue에서 출생한 ‘영국인’으로, 아버지 윌리암 에드워즈 해먼드(Willian Edward Hammand)와 어머니 앨리스 제인 해먼드(Alice Jane Hammand) 사이에 태어나 침례교회가 운영하는 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26년을 부모와 함께 살았으며 1897-1900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선교사 훈련원에서 수학하는 동안 캐나다 온타리오 출신 로버트 샤프(Robbert Sharp)를 만나게 되었고 1900년에 북감리회 해외여성선교부 소속 선교사로 내한하여 이화학당에서 교사로 가르치면서 상동교회에서 부인들을 가르쳤다. 


1903년 내한한 북감리회 소속 샤프(Robert A. Sharp) 목사와 그해 6월 30일 이화학당 본관에서 노블목사의 주례로 결혼하였다. 1904년 남편 샤프가 공주 선교지부 책임자로 임명되자 함께 공주에 내려와 정착하게 된다.

앨리스 샤프(사애리시)는 선교사역을 위하여 순회선교차 지방여행을 자주하였는데 그가 은퇴 후 한국을 떠나면서 감리교 한국 여성선교사회 연회보고서에 남긴 글에 “한국에서 봉사한 39년은 정말 만족스럽고 즐거운 일이었다. 내가 세운 학교에서 어린이들이 교육받고 주일학교와 교회에서 훈련 받아 전도사, 교사, 전도부인, 의사, 간호사로서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고 기록하고 있다.


앨리스 샤프가 충청지방을 선교할 당시 연례 보고서 한 장면에 “9월 대부분을 나는 지방에서 보냈다. 숙박시설이 있는 이천으로 갔는데 내가 활동할 중심지로 그곳을 생각하고 때때로 하루나 이틀씩 주변 마을로 나갔다. 이런 선교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느끼는 부족함이 있는데 여성들의 무지는 소름이 끼칠 정도인데 그들에게 공부할 것을 강조하면 우리는 온종일 일해야 하는데 기독교인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럴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는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당시 조선의 여성 대부분이 문맹인 상황에서 여성에 대한 교육은 조선을 문명화 시키고 기독교 선교의 주요한 수단임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1906년 6월 8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제8회 감리교 여성선교사 연회에서 앨리스 샤프는 충청지방 사역보고서에 가장 주요한 내용은 사랑하는 남편 로버트 샤프를 잃었다는 사실이었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르고 그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다르다”


그래서 비록 그분이 나에게 깊은 슬픔을 주셨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그 슬픔을 잊으려고 노력할 것이고 또한 나에게 맡기신 일을 더욱 열심히 할 것이다. 

“이별은 이미 지나갔고 만남이 앞에 있다”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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