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남 선교사의 삶에 다가온 기적의 흔적들
다섯 살 아이가 서울역 앞에 서 있었다. 배가 고팠다.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신문을 파는 것뿐이었다. 손이 시리도록 신문을 들고 서울역과 남대문시장을 오가며 사람들 사이를 누비던 아이는 은인을 만났다. 먹을 것도 없고 기댈 곳도 없던 그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성경말씀을 가르쳐주던 선생님을 통해 그는 하나님을 만났다.
열일곱 살이 되던 해 그의 인생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선회했다. 해병대에 입대해 미국 국무성 파견으로 월남전에 투입되었다. 총성과 포연 속에서 그는 싸웠고 살아남았다. 은성 무공훈장. 전쟁터에서 인정받은 용기의 증거였다. 하지만 그 훈장이 그에게 가져다 준 것은 영광만이 아니었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눈앞에서 쓰러지던 사람들의 얼굴이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그들도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아들이었다. 그 죄책감은 훈장보다 훨씬 무거웠다. 훈장 이야기를 하자면 웃픈 사연이 하나 있다.
한국에 있던 두 아들이 어린 시절 그는 은성무공 훈장을 엿장수에게 갖고 가서 엿 한 가락과 바꾼 것이다. 전쟁의 영웅이 받은 훈장이 달콤한 엿 한 조각으로 사라진 셈이다. 이정남 선교사는 그 이야기를 할 때 씁쓸하게 웃었다. 그 훈장에 담긴 무게를 아이들이 알 리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는 그 훈장을 붙들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총 대신 성경을 들고 다시 월남 땅으로 돌아갔다. 자신이 싸웠던 그 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30년 동안 그는 자신이 상처 입혔던 땅을 품었다. 죄책감이 사명이 되었고 사명이 삶이 되었다.
인간의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헌신은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무언가 더 큰 힘이 그를 붙들고 있었다.
이제 그는 토론토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오랜 세월 몸을 혹사한 탓이었을까. 얼마전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5년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판정이었다.
평생을 하나님 앞에 드렸던 사람은 마지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 전 담당 전문의가 그에게 말했다. 10년, 아니 20년은 더 살 수 있다고. 그의 상태가 호전되었으며 3만 달러짜리 약품을 캐나다 정부가 무료로 지원받게 되었다고. 그는 LA의 의사 아들과 함께 전화로 기쁨을 나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 아니고 무었일가까?
그뿐이 아니다. 수개월 전 팀호튼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아내가 여권과 현금이 들어 있던 가방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힘들고 마음 애처로운 마음으로 2개월이 지냈다. 그런데 최근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 여성이 그 가방을 2개월 동안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여성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아닐까 생각이 앞섰다. 잃어버린 가방을 손에 쥔 여성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가방을 돌려주었을 것이다. 여권도 현금도 그대로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다.
트럼프의 폭정으로 글로벌 소사이어티가 불안에 떨고 있는 지금, 캐나다의 다민족 복합문화주의 풍토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감사하게 느낀다. 미국은 개척과정에서 수많은 인디언들을 말살시켰지만, 캐나다는 소수민족을 품는 모자이크식 융합정책을 견지하고 있어 새삼 캐나다 땅에 살고 있다는 게 감격스러울 뿐이다. 얼마 전 이 선교사는 우연히 서울 어느 지하철역 에서 57년 만에, 노인이 된 은인을 우연히 만났다. 신문팔이 소년에게 먹을 것을 주고 성경말씀을 가르쳐주던 그 여선생님은 너무 반갑고 감격한 나머지 지하철 승객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겠다며 외쳤다.
이정남 선교사의 삶을 보면서 필자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서울역 앞 신문팔이 소년을, 죄책감에 짓눌린 전쟁 영웅을, 시한부 판정을 받은 노년의 선교사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기적은 거창한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의사의 입에서 나온 말 한 마디로 오기도 하고 양심을 이기지 못한 낯선 이의 손을 통해 오기도 한다. 이정남 선교사의 삶은 그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그리고 기억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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