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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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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칼럼

겸손한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김윤규 2026-03-13 0

“목사님 뇌 MRI를 한번 찍어 보시지요!”


십여 년 전 어느 날 가정의 선생님으로부터 청천벽력(靑天霹靂)과 같은 제안을 받았습니다. 연일 피곤한 몸으로 박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가정을 돌보고, 교회 사역을 함께 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증상 중 하나가 눈동자가 빨개지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피곤해서 그런 것 같아서 며칠 쉬며 회복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저의 노력과는 정 반대로 눈동자는 더 빨갛게 변해갔습니다. 결국 가정의 선생님을 만나 약을 처방 받았지만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가정의 선생님은 조금 더 정밀한 검사를 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뇌 안에서 어떠한 이유로 시신경을 눌러 부어오르는 ‘유두부종’(Papilledema)을 의심하셨습니다. 저는 의사 선생님께 조금 더 쉽게 설명을 요구하였는데, 선생님은 아닐 가능성이 많지만 혹시 ‘뇌종양’일 가능성이 있으니 MRI를 촬영해 확인해 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MRI 촬영 소견서를 가지고 저는 영상 진단 센터(Medical Diagnostic Imaging Centers)에 갔지만 MRI를 촬영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유는 MRI는 학생들이 가입되어 있는 학생 의료보험(UHIP)으로는 커버가 되지 않고, 온타리오 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의료보험(OHIP)으로만 커버가 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MRI 촬영 비용이 600불이었는데, 유학생 신분으로 통장에 600불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고 함께 기도하자고 하였습니다. 가정의 선생님께도 MRI를 촬영하지 못했다고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지만, 저의 모습 가운데에는 어느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인분들에게 전화를 걸고 막막했습니다. 돈을 빌려 달라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안부만 묻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뇌종양’이라는 무서운 단어로 인하여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사람을 기대며 현실적인 대안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저의 마음 안에 내재되어 있는 교만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사람을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며칠이 지나, 한국에서 소식을 들은 가족분들이 돈을 보내주셨습니다. 또한 가정의 선생님께서 비용은 추후에 내더라도 MRI를 먼저 촬영하도록 영상 진단 센터에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교만한 마음을 알고 계시면서도 또 다른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MRI 검사 결과 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받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남 유다의 왕들 가운데에서 가장 악한 왕을 한 명 뽑는다면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입니다. 므낫세 왕은 자신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웠고, 바알들을 위해 제단을 쌓았으며, 아세라 목상들을 만들었습니다(대하 33:3). 또한,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영원히 두리라”(왕하 21:7)라고 말씀하신 예루살렘 성전 안에 이방 신들을 위한 제단을 쌓았고(왕하 21:4), 성전 안마당과 바깥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한 제단을 만들었습니다(왕하 21:5). 심지어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자신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인신 제사를 드렸으며, 점쟁이를 불러 점을 치게도 하였고, 마술사를 시켜 마법을 부리게도 하였고, 악령과 귀신을 불러내어 물어보기도 하였습니다(왕하 21:6).


이러한 삶을 살아갔던 므낫세 왕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듣지 않고 교만한 삶을 살아갔습니다(대하 33:10).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므낫세 왕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에서 앗수르의 공격을 받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대하 33:11). 므낫세가 유다에서 가장 강력한 권세를 휘두를 때 그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방 땅 바벨론의 차가운 지하 감옥, 스스로의 힘으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철저한 무력감 속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 때 므낫세 왕에게 있어서 고난은 회개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므낫세가 바벨론의 감옥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대하 33:12).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므낫세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회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대하 33:13).


겸손이란 단순히 성격이 온순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전적인 무력함과 죄성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 앞에 자신을 납작하게 엎드리는 영적인 굴복을 의미합니다.


교만한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견만을 주장하는 독백이지만, 겸손한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교만한 기도는 인생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하지만, 겸손한 기도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는 능력 있는 사람의 기도가 아니라 겸손한 사람의 기도입니다.


(대하 33:12-13)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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