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의 문턱에서 돌아본 길
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듯이 역사는 현대인들에게 미래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이제 초로의 나이 70을 넘고 80을 지나 90의 문턱에 들어서니 내일은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어라.
긴 세월을 지나 여기까지 와보니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게 된다. 젊을 때는 늘 앞만 보고 달렸다. 어느 날 거울 속 얼굴을 보니 내가 걸어온 길이 어느새 긴 세월을 넘어왔다. 마음은 아직 청춘이지만 몸은 예전 같지 않다. 우리 부부는 어린 세 아들을 데리고 이 땅에 왔다. 이민 짐을 멘 코흘리개 아이들이 비행기 타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민자의 삶은 언제나 낯선 땅에 작은 발자국 하나를 남기는 일과 같다. 길을 만들어 주는 사람도 없고 대신 살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하며 살았다. 꽃을 팔며 수많은 사람의 삶의 순간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삶은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오는 계절과 같다는 것을 배웠다. 세월이 흐르면서 쿠바 선교에 열중했다. 실버들을 이끌고 쿠바에 매년 갔다. 최근 한국과 쿠바가 국교를 맺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부부의 작은 발걸음이 한 알의 밀알이 되었다는 기쁨이 있었다. KAL기 폭파사건 때 오직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토론토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주도하던 때가 있었다. 캐나다에서 추방 위기에 몰린 탈북자들을 위해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들을 위해 변호사와 국회의원을 만났다. 북한에 억류된 임현수 목사를 위해 기도하며 정부에 탄원서를 쓰고 토론토스타 기자를 만나 인터뷰하고 서명운동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이 일을 하는가. 답은 하나였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었다.
토론토 한인노인회 종합복지회관 건립을 위한 모금위원장 일을 오랫동안 맡았다. 총영사관과 주재상사 그리고 한인단체와 기업가들은 물론 식당과 구멍가게까지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거절도 당하고 설득도 했다. 그 과정 속에서 공동체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수고로 세워진다는 사실을 배웠다. 윗비에 있던 필자의 집이 화재로 모두 타 버린 적이 있었다. 눈앞에서 평생 일군 보금자리가 재가 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그 일을 겪으면서도 한인노인회 종합복지회관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나는 GO트레인을 타고 토론토를 오갔다.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지만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흔을 넘어가는 지금, 조용한 오후 창가에 앉아 저녁노을을 바라보면 지난 세월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함께 웃던 사람들과 서로를 격려하던 친구들의 미소가 나를 감싼다. 그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다. 젊었을 때는 앞만 보고 달렸다. 아흔을 넘긴 지금 돌아보니 기억 속에 남는 것은 함께 걸어 주었던 사람들의 얼굴이다. 누군가가 내게 인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인생은 결국 동행이라고. 잠깐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 서로 등을 밀어 주며 가는 길이라고. 세월은 조용히 사람을 앞으로 데려간다. 어느 날 갑자기 늙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등을 밀어 보내 버린다. 얼마나 더 걸어갈지 알 수 없다. 내 삶의 흔적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삶이란 결국 이웃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서로에게 남기는 따뜻한 온기가 인생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흘러간 강물은 장밋빛처럼 밝은 인생이어라
아쉬움도 미련도 찬란한 그리움으로 익는데
어디로 가야 가는지 남은 길 헤아리지 않아
저녁 노을 빛이 저리 고우면 그것으로 족하리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