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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하늘은 굽어본다

이윤희 2026-03-19 0

올해는 3.1 혁명일 107주년이다. 국가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어려운 시기임을 온 국민이 느끼고 있는 중차대한 시점이다.


지난 밤사이 눈이 15cm 내렸다. 하지만 3월이니까 봄이다. 강변 실버들 가지에 물이 오를 때다. 봄은 영산장강을 타고 우리 곁으로 다시 온다. 그렇지만 한번간 옛사람은 다시 돌아오지를 않는다.

의병장 전해산의 유시를 보자.

서생이 무슨 일로 갑옷을 입었나   본래 세운 뜻 틀려지니 한숨만 나오고 조정의 그르치는 꼴 통곡하겠네 바다건너 들어온 도적. 차마 말도 못할제 대낮에 소리 삼키고 강물이 멀어지고 푸른 하늘도 오열하여 실버들에 비 뿌리고 이제는 영산강에를 다시 못 가리니 두견새 되어 피눈물 흘리며 돌아갈 거나...


전북 임실 태생인 전해산은1907년 남원에서 기병을 일으켰다.  그는 나주를 중심으로 해서 순창. 광주. 영광. 장성. 부안 등 여러 고을 장정들을 이끌고 국운이 다할 때까지 싸웠다. 1909년 봄 마침내 전력이 소산함에 따라 남원 산속으로 숨어들어 서당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기 수개월 만에 믿었던 지인의 밀고로 일병들에게 포박당했다.

붙잡힌 이후 그는 일인들의 온갖 회유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들에게 죽음으로 응대한 것이 앞서 소개한 유작 시였다. 장군 전해산은 끝내 영산강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1910년 7월18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

부인 역시 열녀였다. 그간에 시부모의 상을 홀로 치르고 있다가 남편의 유해가 돌아온 날 순절했다.


[서생이 무슨 일로 갑옷을 입었나]를 생각해본다. 나라가 위급의 경에 처했을 때. 나라를 잃었을 때. 그때마다 내 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그런 사람들을 3월은 생각케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자승으로서 이민족과 맞섰다. 그는 일상에서 고개 숙이는 것을 싫어했다. 장성해서는 꼿꼿하게 머리를 든 채로 세수를 했다. 8년간의 여순감옥생활 중에서도 고개든 채로 세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찍이 망명생활의 어려움을 [산도 물도 다 한곳에 곡하기 그도 마저 어려워라] 하고 토로했다. 그러나 그는 어둠. 고초. 불행이 점철된 수난의 시대 한가운데를 살면서도 일말의 주저함이 없이 민족의 빛을 위해 투쟁한 가장 자랑스럽고도 신념에 찬 불굴의 한국인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는 일제의 침략 앞에서 철저한 신념과 행동으로서 민족적 응전을 감행하는데 서슴치 않았으며 따라서 그는 민족이 다시 일어서려면 개개인이 모두 [역사적 삶]을 영위 할 줄 아는 인식이 투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권을 잃었을 때의 단재 선생의 장탄식이 오늘에 와서도 우리의 가슴을 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3월은 언제나 우리에게 우리의 정기를 점검케 하는 것 같아 마음을 무겁게 한다. 선열 대하기에 부끄러움은 없는지. 자괴 스러울때가 많아 괴로움이 따른다.


민족정기로 말하자면 오늘에 와서 우리의 가치관이 이처럼 정돈을 보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바로 이 민족정기의 경시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한마디로 불의의 척결에 철저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그것이다.


지난 80년중반 국회 야당에서는 김구선생 시해 사건의 전모가 아직도 불명인 채로 묻혀있음을 지적하고 진상을 밝힐 것을 주장했지만 이에 대한 정부당국이나 일반의 반응이 어떠했는가를 생각하면, 사실은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으리라 여겨진다.


외세가 갖다준 이 땅의 해방은 그래서 자주적 남북통일과 친일파 숙청이라는 명제를 짧은 시일 안에 희석시켜버렸다. 남북이 허리가 잘린 순간부터 첨예하게 나타난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곧이어 터진 6.25 남북전쟁으로 민족정기라는 것은 동족상잔의 비극에   눌려 찾을 곳을 잃고 말았다.


이에 앞서 정부수립직후의 제헌국회가 주도한 반민족행위자 처벌법에 의한 반민특위 활동이 이승만 정권의 집요한 방해를 받아 이내 와해되어 버린 것도 역사는 나중에 이것을 어떻게 풀이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다만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의문을 남겨놓은 채로 묻혀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항상 역사의 장을 넘길 때마다 [매듭]을 시원스럽게 짓지  

못한 채로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올해 46주년을 맞는 5.18 광주 민중항쟁 시 시민 수백 명을 학살하였는데도 지금까지 진상을 밝히지 못한다는 게 한스럽다


옳은 것에 대한 드높임 선양. 그리고 그른 것(반민족. 반민주)에 대한 청산을 한 개인. 한 정파의 작은 이익을 앞세워 자주 포기해 버렸음을 보아왔다.


역대정부는 국민적 화합이라는 민족의 밝은 내일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늘 앞세웠다. 그런데도 5.18 광주민중항쟁을 비롯한 여러 가지 과거의 청산이나 민주화 의지의 실천을 게을리하려는 기색을 보인다면 이야기는 틀려진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선열들께서 [3월의 하늘]이 굽어보고 있음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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