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분 곁에서 일꾼 장인(匠人, 기술자)처럼 일하며 날마다 그분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잠언 8:30)
잠언 8장에서 지혜는 단순한 속성이나 추상 개념이 아니라, 창조의 현장에 함께 있었던 살아 있는 동반자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은 혼자 세상을 만드신 고독한 장인이 아니라, 지혜와 더불어 기뻐하며 창조하신 분입니다. 지혜는 “장인”(אָמ֑וֹן, master workman, architect-adviser)처럼 그 곁에 서 있었고, 하나님은 그 지혜를 기뻐하셨으며, 그 기쁨은 곧 창조 자체로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창조는 필요의 산물이 아니라 기쁨의 결과이며, 목적 없는 힘의 폭발이 아니라 사랑과 즐거움이 배어 있는 작품입니다.
잠언 8장은 이 창조의 기쁨을 감각적으로 펼쳐 보입니다. 샘에는 물이 넘치고, 바다는 한계를 부여받으며, 흙은 처음으로 빚어집니다. 이 모든 장면에서 질서와 경계는 억압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다에 선을 그으신 것은 생명을 가두기 위함이 아니라, 생명이 머물 자리를 마련하시기 위함입니다. 지혜는 이러한 하나님의 행적을 곁에서 바라보며, 그 질서 안에서 기뻐하고 노래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지혜가 자신을 “그분 앞에서 즐거워하며, 그분의 땅에서 놀고”(8:30–31) 있다고 말한다는 점입니다. 창조는 긴장만 있는 작업장이 아니라, 놀이와 환희가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여기서 놀이는 무책임함이 아니라, 창조 질서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안식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창조를 끝내신 후 쉬셨고, 그 쉼은 지루함이 아니라 만족의 쉼이었습니다.
이 창조의 기쁨은 오늘 우리의 삶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삶의 무게와 상처 속에서도 우리는 지혜와 함께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갓 피어난 꽃 한 송이, 맑은 하늘에 떠 있는 솜털 같은 구름, 인간 곁에 머무는 동물의 온기와 충성은 우연한 위로가 아니라, 창조주께서 여전히 우리를 부르시는 언어입니다. 지혜는 세상 속에서 놀며 하나님을 기뻐했고, 우리 역시 그 초대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지혜는 “사람의 아들들을 기뻐하였다”(8:31)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아들이란 흙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피조물(mortals)입니다. 창조주를 옆에서 돕는 탁월한 장인(지혜)이 흙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기뻐했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늘 좋은 조언을 주는 고문(顧問, counselor)은 조언을 받는 대상에겐 언제나 즐거움과 기쁨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창조의 방해물이 아니라, 지혜가 기뻐하는 대상입니다.
지혜의 충고와 조언을 따르는 인간, 그 인간의 친절, 정의를 향한 작은 몸짓, 예술과 언어의 창조성, 타인을 향한 돌봄의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창조의 기쁨이 아직 꺼지지 않았음을 발견합니다. 죄와 깨어짐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지혜 안에서 인간을 기뻐하십니다.
기도: 창조주 하나님, 우리가 세상을 단순히 견뎌야 할 장소가 아니라 당신의 기쁨이 스며 있는 공간으로 다시 보게 하소서. 당신의 세상에서 놀 줄 아는 지혜를 주시고,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기뻐하게 하소서. 아멘.
참조: 8:30의 히브리어(אָמ֑וֹן) 단어의 한국어 번역은 다양하다. “창조자”(개역 개정); “조수”(공동 번역); “창조의 명공”(새 번역); “기술자”(새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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