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까지만 해도 두꺼운 겨울 외투를 옷장에 넣어야 하나 고민할 만큼 따뜻한 봄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 오고, 겨우내 산처럼 쌓여 있던 토론토의 그 악명 높은 눈이 간신히 다 녹아가던 즈음이었지요. 그런데 지난 주말, 토론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하얀 눈을 쏟아내며 기온을 영하권으로 뚝 떨어뜨렸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오신 여러 분들께서 저에게 두툼한 모피를 보여주시며 “집어넣었던 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말씀해 주시더군요. 이 글이 실리게 될 때 쯤을 전후해서도 눈과 진눈깨비가 예보되어 있던데, 모든 분들께서 안전하고 따뜻하게 지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독 올겨울은 눈이 주말에 집중되어 우리의 마음을 애태웠던 것 같습니다. 모처럼 주말을 맞아 가까운 교외로 훌쩍 여행을 떠나려던 이들의 발을 묶어버리기도 하고, 주일을 맞아 교회로 향하던 성도님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찾아오기로 한 자녀들이 길 때문에 못 오게 되어 아쉬워하신 어르신들도 계셨고, 오랜만에 만나려고 했던 친구들을 만나지 못해 답답해 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도 빙판길에 어르신들이 다치실까 염려되어 토요 새벽기도회를 급히 온라인으로 전환한 적도 있었고, 어떤 날은 매서운 눈보라를 뚫고 모여 교회의 미래를 위한 묵직한 안건들을 논의해야 했던 치열한 주말들도 있었습니다.
다 끝난 줄 알았던 추위가 이처럼 불쑥 찾아오면, 우리는 “아직도 겨울이구나” 생각하며 덜컥 지치곤 합니다. 이민 사회에서의 우리 삶도 이와 비슷할 때가 많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얽혀버린 관계의 문제들, 혹은 타국 생활의 외로움이 이제는 좀 지나갔나 싶었는데, 다시 차가운 눈보라처럼 몰아칠 때면 "다시 제자리인가?" 하며 마음이 얼어붙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력의 달력을 보면, 지금 우리는 부활절을 2주 앞둔 ‘사순절’의 시간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겉으로는 고난과 인내의 멈춰진 시간 같지만, 실상은 꽁꽁 언 땅속에서 부활의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잠잠히 기다리며 나아가는 영적인 봄맞이의 시간입니다.
자연의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뜻 보면 다시 한겨울로 후퇴한 것 같지만, 얼음장 밑에서는 이미 생명의 수액이 힘차게 흐르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상징인 메이플 시럽도 바로 이맘때, 밤의 영하 기온과 낮의 영상 기온이 교차하는 그 짓궂은 온도 차를 견디며 나무가 뿜어내는 진액입니다. 이미 일광절약시간제가 시작되어 우리의 저녁은 환해졌고, 태양의 고도는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기상청의 장기 예보는 때로 빗나갈지 몰라도, 창조주께서 심어두신 계절의 섭리는 결코 빗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CCM 가수 김도현의 ‘봄’이라는 찬양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가 염려했던 지난 날들과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추운 겨울은
주님의 약속대로 흔적도 없고
내 하나님 행하신 일, 만물이 찬양하누나”
이번 주말에도 눈 예보가 섞여 있고 여전히 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지만, 겨울은 결코 봄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긴 사순절이 지나가면, 반드시 부활절이 옵니다. 얼음장 밑에서 쉼 없이 흐르는 물줄기처럼, 생명의 소망은 이미 우리 삶의 밑바닥을 녹이며 소리내어 흐르고 있습니다.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 소리가 들리지 않으시나요? 기나긴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계신 모든 분들의 삶에도, 주님의 약속대로 흔적 없이 늦추위가 물러가고 따스한 은혜의 봄이 활짝 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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