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나는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자유 고전 읽기 대회'라는 생소한 무대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읽을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 학교에서 주는 책들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 읽었다. 생각해보면 공자가 누구인지, 부처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초등학생에게 <논어>, <불교설화>, <구약이야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책들은 감당하기 버거운 무게였다. 뜻도 모른 채 글자 위를 유영하듯 책장을 넘기기도 했고, 또 책 속의 이야기에 빠져들기도 했다. 사실 그 독서는 스승님의 지극한 관심과 예우 덕분에 견딜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당시 대회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일종의 '특권'이 주어졌다. 모두가 똑같이 나누어 먹던 급식 빵을 하나 더 받을 수 있는 '특급 대우'였다. 그 시절, 고소한 빵 하나가 주는 행복은 고전의 난해함을 잠시 잊게 할 만큼 달콤했다. 선생님은 각 학교에서 뽑혀 온 수재들과 겨루어야 하는 제자를 위해 정성을 다해 지도해 주셨고, 전교생 앞에서 '글 잘 쓰는 아이'로 나를 세워 상장을 안겨주셨다. 덕분에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전국대회까지 나갔던 것이다.
어린 제자의 재능을 미리 보시고 귀하게 여겨주신 그 지극한 사랑.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읽었던 것은 딱딱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믿어준 스승님의 따뜻한 시선이었다는 것을. 그때 삼켰던 문장들은 세월이 흘러 삶이 흔들리는 순간마다 보석처럼 건져 올려져 나를 지탱하는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어제부터는 <논어>의 첫머리에 나오는 '세 가지 기쁨'을 가만히 되새겨 본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문장을 곱씹을수록 성인이라 추앙 받던 공자 역시,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밀려오는 고독과 속상함을 수없이 견뎌냈던 한 인간이었음을 느낀다. 그 스스로가 겪었던 마음의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이것을 '기쁨'이자 '군자의 길'이라 명명하며 스스로를 다독였을 것이다.
요즘처럼 내가 쏟은 정성과 진심이 타인의 눈에 온전히 닿지 않아 마음이 헛헛할 때, 이 오래된 문장은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내 안의 배움이 깊어지고, 내 곁에 마음 나눌 이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느냐고. '공자 같은 성인도 그러했는데 하물며 나 같은 사람이야...'라고 말이다.
어린 시절, 억지로 읽어야 했던 숙제 같던 문장들이 이제는 내 삶의 숙제를 풀어주는 열쇠가 되어 돌아온다. 그 무거운 책장 사이로 나를 이끌어주셨던 스승님들의 그림자가 오늘따라 무척이나 그립고 고맙다. 뜻도 모르고 읽었던 나의 독서가 실은 사랑 받고 있었다는 증거였으며, 평생 내가 힘들 때마다 되돌아보게 하는 귀한 등댓불임을 비로소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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