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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레시피

김용원 2026-03-27 0

분주했던 아침이 지나고 아이들을 학교로 보낸 뒤, 잠시 찾아온 평온함 속에서 차분하게 일과를 처리하며 오후를 맞이합니다. 일터에서 수고하는 아내의 빈자리를 생각하며, 오늘은 학교에서 돌아올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간식을 준비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느덧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들이닥칩니다. “I’m starving! 아빠, 배고파요!” 이제 겨우 다섯 살, 열 살 된 작은 아들들부터 10학년이 되어 훌쩍 커버린 큰아들까지, 아이들의 허기진 외침에 조용하던 주방은 활기가 넘쳐납니다.


아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서둘러 소매를 걷어붙였습니다. 평소 아내가 해주던 그 손맛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나름대로 맛의 조화를 생각하고 재료 하나하나에 정성을 듬뿍 담았습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줄 모습을 상상하며 조리 순서를 세밀하게 살피고 불의 세기까지 조절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탁 위에 올려진 음식은 모락모락 김이 나며 제법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보기에는 영락없이 아내가 해주던 그 맛있어 보이는 요리 같았습니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입 크게 베어 문 아이들의 표정은 이내 미지근해졌습니다. 저 역시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분명 나름의 정성을 다해 모든 과정을 충실히 따랐는데, 왜 엄마가 해주던 그 깊고 포근한 맛이 나지 않는 걸까요?


겉모양은 제법 맛있어 보였지만, 입안에서 느껴지는 풍미는 어딘가 본질이 빠진 듯 허전하고 겉도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모든 요리에는 단순히 식재료의 나열을 넘어, 그 요리의 종류와 이름을 결정짓고 맛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결정적인 식재료’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것이 빠지면 아무리 모양이 훌륭해도 결코 그 요리 본연의 맛을 낼 수 없습니다.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도 이와 참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낯선 땅 캐나다에서 이민 교회의 공동체를 이루고, 개혁주의 전통에 따라 바른 교리를 배우며, 정해진 예배의 형식을 엄격히 지키며 살아갑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흠잡을 데 없이 맛있어 보이는 요리처럼 신앙의 겉모습을 갖추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진한 풍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혹시 가장 본질적인 재료들을 빠뜨린 채 종교라는 형식만을 조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참다운 신앙의 맛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간절한 ‘기도’, 그리고 성령의 역사가 빚어내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말씀이라는 정확한 기준이 우리 영혼의 뼈대를 세우고, 기도라는 성령의 불꽃이 우리 삶을 뜨겁게 달굴 때 비로소 신앙은 생명력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인격적으로 맺어지는 성령의 열매들은 우리 신앙이 단순히 지식에 머물지 않고, 세상이 흠모할 만한 깊고 풍성한 맛을 내게 하는 결정적인 재료가 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종종 이 본질적인 요소들을 놓친 채 살아갑니다. 말씀의 깊이 없는 열광적인 기도나, 기도의 눈물 없는 메마른 지식은 신앙의 균형을 깨뜨리고 신앙의 맛을 잃게 만듭니다. 또한 일상의 현장에서 사랑과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가 우러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겉만 번지르르할 뿐 정작 영혼을 살찌우는 참된 양식이 될 수 없습니다. 이름뿐인 신앙, 모양만 그럴싸한 종교인이 아닌, 신앙의 본질적 요소들이 우리 삶에 깊이 녹아들 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신앙의 참맛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광야 같은 이민의 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종종 삶의 의욕과 신앙의 활력을 잃어버린 채 허기진 마음으로 주저앉곤 합니다. 모양은 그럴듯하나 속은 비어 있는 공허함이 찾아올 때, 우리는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 영적인 상태를 점검하듯 우리 마음의 재료들을 살펴야 합니다. 화려한 종교적 장식보다 내면의 본질적인 요소들에 다시 집중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이 거룩한 재료들이 우리 일상의 삶 속에 온전히 녹아들 때, 비로소 신앙의 맛을 통해 스스로에게 하늘의 기쁨이 되고, 이웃에게는 참된 위로를 전하는 '깊고 풍성한 맛을 내는 신앙'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의 삶이라는 식탁 위에 그 신앙의 맛이 가득 배어 나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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