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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칼럼

여호와여, 내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김윤규 2026-03-27 0

“아빠, 왼쪽 눈이 부었어요!”


저녁이 되어서 집에 온 저에게 하성이가 아빠 눈이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아내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혹시 ‘다래끼’(stye) 아니에요?”라고 질문을 던져 옵니다. 거울을 보니 왼쪽 눈썹 아래가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왼쪽 눈이 불편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성이가 이래저래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알레르기라면 찬 수건으로 마사지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내도 덩달아 오늘 잘못 먹은 음식이 있는지 질문해 옵니다. 그런데 오늘 집에서 평소처럼 먹은 음식 이외에 특별히 밖에서 먹은 음식이 없습니다.


목요일 아침 눈을 떠 보니, 왼쪽 눈이 너무 부어서 떠지지 않습니다. 주일이 가까이 오는데 걱정이 되어서 패밀리 닥터에게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혹시 평상시에 먹지 않던 음식을 먹은 것이 있는지 질문해 오십니다. 제가 특별한 음식을 먹은 것이 없다고 하자, 의사 선생님은 저의 눈을 검사하시면서 “눈썹 안쪽에서 다래끼가 올라오네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의사 선생님은 다래끼가 눈 안에서 자라고 있어서 많이 아플 거라고 이야기 하시면서 눈에 넣는 항생제(antibiotics) 안연고를 처방해 주셨습니다. 더불어 따뜻한 수건으로 찜질도 많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일이 다가오는데 눈동자 주변으로 나올 다래끼는 보이지 않고, 눈 밑이 더욱 부어올라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다래끼로 인해 토요 전도도 나가지 못하고, 주일 설교 준비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성경을 볼 수 있으니, 열심히 설교 준비를 하여 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눈에 붓기가 주일에 정점을 이루어서 성도님들께 걱정을 끼쳐 드렸습니다. 저는 성도님들께 “다래끼가 좀 났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퉁퉁 부은 눈을 보고 성도님들께서는 “목사님,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래요! 조금 쉬세요!”라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눈 자체가 빛을 발하여 사물을 비춘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를 영적인 비유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에 시선을 고정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온 존재가 빛으로 가득 차거나 어둠에 잠기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눈은 단순히 빛을 통해 형체를 바라보는 기관만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열어두는가를 나타내는 영적인 창(窓)의 역할을 합니다.


열왕기하 6장 8-23절의 내용을 보면, 아람(시리아) 왕이 북 이스라엘을 치려고 할 때마다 선지자 엘리사(Elisha)가 하나님의 계시로 그 계획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미리 알려 주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아람 왕은 내부에 첩자가 있다고 의심하지만, 아람 왕의 신하들은 엘리사가 그 비밀을 왕에게 알려준다고 말합니다(왕하 6:12).


이로 인하여 아람 왕은 엘리사가 거주하는 북 이스라엘의 도단(Dothan) 성을 에워싸기 위해서 군대를 보냈고, 엘리사의 사환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자신의 사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왕하 6:17)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그러자 사환의 눈이 열렸고, 엘리사를 둘러싸고 있는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사환의 육체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엘리사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을 때 영의 눈이 열려 불 말과 불 병거를 선명하게 보았습니다.


여리고에는 디메오의 아들 바디메오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시각 장애인이었기에 구걸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신이 구걸하던 길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크게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 10:47) 그러자 예수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막 10:51) 예수님의 질문에 바디메오의 대답은 단 한 문장이었습니다.


(막 10:51)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 짧은 바디메오의 간구 속에, 인간의 가장 깊은 갈망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나님을 보기 위해 기도하기보다,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를 접하고, SNS를 통해 타인의 일상을 보며, 불안과 비교와 시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은 우리의 눈을 통해 세상의 창(窓)을 바라볼 뿐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눈을 열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적인 창(窓)을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가족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창 밖의 봄이 오는 소식에 하나님의 창조를 보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보아야 합니다.


“여호와여, 내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시 62: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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