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그해 여름, 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의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반 친구들은 두세 명의 ‘이방인’을 제외하곤 방학을 맞아 현대 히브리어를 배우기 위해 이스라엘에 입국한 미국과 유럽 대학의 유대인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이하게도 내가 머무는 기숙사 방을 같이 쓰게 된 여학생은 ‘가오리’라는 이름의 일본인이었는데, 가오리는 아랍어를 배우러 이스라엘을 찾은 학생이었다. 서로 모국어도 다르고, 배우는 언어도 다르지만 방 안에 내 물건 중 유일하게 한자가 쓰인 신라면 봉지의 ‘辛’자를 통해 우리는 같은 한자 문화권이란 동질성을 발견하곤 우의를 다지며 수업 후 각자의 하루를 매일 서로 나눴었다.
7월 30일 점심시간쯤 예루살렘 ‘마하네 예후다’라는 재래시장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스무 명 가까운 유대인들이 목숨을 잃고 백여 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던 그날도 우리는 기숙사 방에 돌아와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했다. 유대인들과 함께 수업을 받은 나는 이 폭탄 테러로 슬픔과 두려움에 잠긴 그들을 이야기했고, 가오리는 성공적인 폭탄 테러로 잔치 분위기인 아랍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한 사건에 대해 극명히 대조되는 이 두 반응은 긴 역사 속에 켜켜이 쌓여온 살기 어린 증오로 적대적인 두 민족에게는 당연한 일일지 모르나, 곁에서 처음 날것의 감정을 지켜보는 우리에게는 낯선 장면이었다. 가오리의 조상과 내 민족의 선조들 또한 이들과 닮은 감정을 서로에게 품었을 터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내게 든 생각은 아랍과 이스라엘이 다른 주변국의 중재로 띄엄띄엄 개최하는 평화 회담이나 평화를 이야기하는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그때와 다를 바 없이 오늘도 서로 살상의 역사를 계속 써가고 있는 중동의 현실은 암울하다.
이번 주일은 종려주일이다. 여러 기적을 행하여 대중으로부터 지지와 추종을 받던 예수가 전통적으로 왕이 거주하는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게 되자 군중들이 그를 환영하며 맞이한 일에 대한 기독교의 기념일이다. 정확히 부활절 한 주 전 주일로 예루살렘 군중들은 그를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이나 왕처럼 맞았다. 그들은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흔들었고, 또한 그가 지나가는 길에 자신들의 겉옷과 나뭇가지를 펼쳐 놓기까지 그를 환대했다.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해방해 줄 메시아로, 또는 정치적 지도자로 예수를 생각했다. 그를 통해 견고한 평화가 그들의 정치적 상황에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며칠 후 예수가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십자가 사형을 당해 속절없이 죽게 되는 전개는 그들이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실, 군중은 이 미래를 알지 못하는 와중에도 그의 입성을 환영하는 도구의 역할을 잘 수행한다. 실상, 예수가 예루살렘에 들어가 죽고, 부활함으로 이루어질 평화는 민족 간이나 정치 진영 간의 평화는 아니었으나 성경은 그가 분명 평화를 가져왔음을 선포한다. 신 앞에 설 수 없는 죄인들이 바로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거룩한 하나님과 관계의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로마서 5:1). 남을 죽여 얻는 평화가 아니라 내가 죽어 남에게 주는 평화인 셈이다. 전쟁이나 테러로 얻는 평화가 아니라 자기 몸으로 십자가형이라는 테러를 감내하여 내어주는 평화였다. 성으로 들어가는 그의 발걸음은 그 의미를 아는 자에게서건 깨닫지 못한 자에게서건 환대받아 마땅한 희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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