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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고국 캐나다-된 박에 영혼을 싣고 (2)

정충모 2026-04-06 0

마침 6월 15일에 캐나다 가는 현지답사 팀이 있는데 그들의 묻어가면 관광을 가는 것 보다 경비가 저렴하니 겸사겸사 다녀오시라며 말라는 폼이 아주 숙련된 가이드 같았다. 현지답사를 한다고 꼭 가는 것은 아니니까 바람도 쏘일 겸 다녀와서 신중이 생각해 보라고 부연 설명까지 한다. 

난 조카의 선택해준 대로 투자이민을 신청 하였다. 순수 투자이민을 생각했지만 부동산 정리가 않되, 급한 마음에 투자이민을 택했다. 용기를 얻은 난 그날부터 세탁 일을 배웠다. 제일 빨리 갈 수 있는 길은 그 길이었고. 마누라가 양장 쟁이기 때문에 사업자 등록을 밭기가 수월해서다. 

아이론에 데고. 찢기면서 6개울을 배우니, 제법 세탁 기술이 늘어. 1년 만에 출국을 할 수가 있었다. 세탁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웃지 못 할 일화도 많지만. 한 가지만 소개 하겠다. 우리가 이민 올 무렵엔 직장인들이 아침 출근시간에. 급히 바지를 다려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시절만 해도 양복을 살수가 없어 단벌신사들이라 세탁소에서 다려 입고 출근하는 게 비일비재하였다.

어느 날 아침 한 젊은 직장인이 바지를 같고. 급히 와서 시간이 없으니깐. 빨리 다려 달랜다. 난 아직 바지도 안 다려본 초보자라. 안절부절 하다. 부엌에 아침밥을 짓는 집사람한테 눈짓으로 불러 바지를 다리라고 하고. 할일 없이 화장실에 가서 집사람이 바지를 다. 다릴 때까지 문틈으로 지켜보다가. 거의 다. 다린 것 같으면 바지춤을 추스르며 옷 주인한테 “손님 미안해요. 어제저녁에 너무 과음을 했더니. 화장실이 급해서 그만 다려 드리질 못해 죄송합니다. 하며 거짓말로 너스레를 떨며 위기를 넘기곤 했다. 당시는 바지가 주름이 칼날같이 잡아야. 폼이 나는데 여자가 다리니깐 주름이 시원치 않기 때문에 손님과 자주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3월의 날씨는 유난이 쌀쌀했다. 난 마지막 하직인사를 하러 선산을 찾았다. 어머님 앞에서니 만감이 서린다. 몰락한집안으로 시집을 와 층층시하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도 많으셨고, 지독한 가부장 유교세습에 물 들어진 영감님을 모시느라 정작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못하고 고생만하시다 돌아가시게 한 것이 한이 되었다. 

난 어머니 무덤 앞에 서자. 설음을 못 이기고 어린애모양 마냥 흐느끼고 있었다.

"어머니 이제 떠납니다. 

"앞으로는 자주 찾아 뵙지 못 하니까. 기다리지 마세요? 

끔찍이도 셋째만 사랑 하시던 어머니, 막내이면서 막내대우를 못 밭은, 난 그것이 섭섭하여 투정을 부렸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어머니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난 후, 산소마다 돌아가면서 흙 한 즘씩을 된 박에다, 퍼 담았다. 산소뿐 안이라 발길이 많이 닫던 곳마다, 골고루 퍼 담았다. 

나의 괴이한 행동에, 누이가 묻는다.

"웬 된 박!" "언제 그런걸. 만들었어." "응, 오래 전에 만든 것이데."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미리 만들어 놓았던 거예요. 이걸 가지고 캐나다를 가면. 요긴하게 써질 겁니다.

"흙은 또 무얼 하려고? 난 누이에 질문에 웃기만 한다.

내가 웃기만 하자 누이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더 다그친다. 피할 수 없음을 의식한 난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누나 " 토룡(지렁이)이. 와룡(용)의 큰 뜻을 어찌 알겠소? 내가 떠나면 이 땅에 언제 올지, 기약을 할 수 없지 않소? 

"이거라도 가져가 힘들 때마다 조상을 보듯 고국을 그리워하려고요.

"이안에 들어있는 것은 흙이 안이고, "조상님들의 영혼 이예요? 훗날 나의 영혼도 되고요?

그제야 누이는 나의 뜻을 할아 차리고는 고개를 끄떡인다.

친 누나 역시 내가 이민 가는걸. 극구 반대를 해왔다.

예야? 늦게 무슨 이민을 간다는 거냐? 

"그냥 나하고 어기서 살면 안 되겠니? 

"의지할 때라곤 너 박에 없는데, 너 마저 떠나면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누나는 떠나는 날까지도 아쉬워하며 말렸던 것이다. 

그러나 한번 미쳐버린 나의 마음은 그 아무도 잡지를 못했다. 오히려 먼저 가서 자리를 잡아 놓을 태니까, 누이도 오라고 반 농담까지 하였다.

벌써 공황에는 몇몇 친구들과 친척들이 나와 있었다. 난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속 엔 끈끈한 액체가 응축되어있다. 

"그 나이면 나 같다가도 들어올 나이인데 결국 가는구나? 

누나의 눈자위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소리는 이민 수속할 때부터 들었기 때문에 한쪽으로 흘리면서도, 걱정해주는 누나가 있어서 든든했다. 누나의 오열은 개찰구의 문이 닫힐 때까지 긴 여운을 남겼다. 

“자, 이제는 어떻게 한다? 

나는 사우디 갈 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차이가 있다면 사우디는 경제적 사정으로 간 것이고. 지금은 식구 전체가 삶의 둥우리를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더 막중했다. 관광을 가는 것도 안이고.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이민 길이 평탄 하리라고는 바라지도 않지만. 전부터 캐나다가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이 인식되어 호기심과. 기대는 저버릴 수 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민 오기 전부터 딱히 계획이나. 설계가 서있던 것이 안이다. 먼저 온 사람들의 동량지식만 가지고 막연히 떠나와. 현지에서 적응할 생각이었다. 캐나다도 사람들이 사는 세상인데, 나라고 못 삶겠냐는 것이 나의 오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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