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결국 죽음 앞에 서게 됩니다. 누구도 이 현실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인간이 맞닥뜨리는 가장 근원적인 한계이자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질병으로든, 예기치 못한 사고로든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는 순간, 우리는 깊은 슬픔 속에서 인생의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죽음은 끝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시작입니까. 이 질문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단순한 사색을 넘어 삶을 지탱하는 고백이 됩니다.
제가 군대에서 제대하고 신학교에 복학하여 전도사로 사역하던 시절의 일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오랜 세월 장로로 섬기시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신 후 신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하셨고, 침술을 통해 의료 선교와 함께 개척 교회를 세우시며 헌신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 질병을 늦게 발견하여 초기 치료의 어려움으로 병을 제때 다스리지 못하셨고, 결국 병세는 점점 위중해졌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태는 악화되었고, 어느날 새벽 병간호 하시는 어머니의 다급한 부름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아버지 임종 예배를 드려야 할 것 같다.” 그 한마디는 마지막을 하나님께 맡기려는 믿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곁에 섰을 때, 방 안에는 점점 가늘어지는 숨소리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침묵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초보 전도사로서 그 순간 제 마음에 떠오른 말씀은 요한복음 11장 25절의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분명한 선언이자 약속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아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죽음 이후에 영혼이 바로 천국에 바로 가게 되며 예수님의 재림 때 부활이 있다는 소망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시간 함께하신다는 진리를 전하며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영혼을 받아 주옵소서.” 그 기도는 절박한 간구이면서 동시에 온전히 맡기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아멘”을 고하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통 가운데 계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환해지며 천사의 모습과 같이 밝은 모습으로 변화되셨습니다. 누군가를 반갑게 맞이하시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미소를 지으신 채 아멘을 마치시고 조용히 하나님 품으로 떠나가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믿는 자에게 죽음은 결코 절망이 아니라 영원한 아버지 나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마지막 순간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 다가오시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눈에는 이별이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완성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하며 그것을 멀리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은 전혀 다른 시선을 열어 줍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약속의 성취이며,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지금도 제 신앙의 기초와 크나큰 힘과 원동력으로 남아 있습니다. 목회 사역 가운데 어려움과 고난을 만날 때마다, 그 환하고 평온한 미소는 제게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죽음을 통해 저에게 보여 주신 아버지의 부활 신앙은 지금도 저의 믿음을 굳게 세워주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붙들어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에게 모든 고난을 이기게 하며 미래의 소망이 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소망의 문이 됩니다.
성도의 궁극적 구원의 완성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심으로 완성이 됩니다. 무덤의 죽은 자가 몸이 부활이 되고 살아 있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새로운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 무궁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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