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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 누워 계신 예수님

장동철 2026-04-06 0

딸아이가 고등학교에 올라가던 때의 일이다. 아내는 딸이 새 학기를 시작할 때마다 딸아이와 미리 학교에 가서 기도를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딸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좋은 친구와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말이다. 딸이 고등학교에 올라갈 때에는 나도 그 기도에 함께했다. 변화에 워낙 민감한 아이라, 고등학교라는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딸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벤치를 찾았다. 그런데 그곳에 어떤 홈리스 아저씨가 주무시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는 바로 옆 벤치에 앉아서 나지막이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가 끝날 즈음에 홈리스 아저씨가 부스스 눈을 뜨고 일어났다. 쌀쌀한 날씨 속에 자고 깨어난 상태라 홈리스 아저씨의 몰골이 더 안쓰러웠다. 그냥 못 본 체하고 돌아오는 것이 민망해서 홈리스 아저씨에게 10불을 건넸다. 아저씨는 자기에게도 돈이 있다며 극구 사양했다. 하지만 우리의 손이 부끄러워할까 봐서 인지 결국 그 10불을 받았다.


다음 날에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 기도하러 갔다. 그런데 어제의 그 홈리스 아저씨가 또 같은 곳에서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이번에는 기도만 마치고 돌아오려고 했는데,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와 아저씨에게 다시 10불을 건넸다. 아저씨가 이번에도 거절하실 것 같아서, ‘딸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드리는 돈입니다’라고 하며 드렸다. 그러자 아저씨는 “딸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딸 이름이 ‘Shylo’라고 답하자, 아저씨는 “Shylo를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어제와 달리 너무 자연스럽게 10불을 받았다. 그러고는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돌아오는 길에 딸이 차 안에서 불평 하듯 말했다. “저 홈리스 아저씨는 왜 매일 저기 있어?”라고 말이다. 그런 딸에게 아내가 말했다. “저분이 예수님일 수도 있어!”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듣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 그렇다. 마태복음 25장에 의하면, 예수님은 가난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목마른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있고, 배고픈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있다. 때로는 너무 아프고 서러워 울고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주님은 그들에게 선을 베풀고, 그들을 위로해 주는 것이 곧 예수님 당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그런 모습은 단순히 타인을 향한 강박적 선을 강요하는 비유적인 모습만이 아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낮고 아픈 모습으로 우리 속에 계셨다. 인간적인 눈으로 그분은 사생아였고, 고된 노동에 지친 목수였고, 결국엔 십자가에서 죽은 죄인이었다. 일찍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고달픈 장남의 삶을 감당해야 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어머니보다 일찍 삶을 마감한 불효자였다. 마태복음 25장은 그 예수님께서 지금도 그러한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아프고 비천한 사람들에게 행한 것이 자신에게 행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원리에 의하면, 딸아이와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한 것이다. 우리가 드린 10불은 예수님께 드린 헌금이고, 우리가 앉아 기도를 했던 그 벤치는 예배당이었다. 홈리스 아저씨가 우리가 드린 두 번째 10불을 받고는 “딸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고 “그 딸을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우리의 예배와 기도에 대한 주님의 응답이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첫날 아내가 10불을 드리려고 했을 때, 그것을 아까워했기 때문이고, 둘째 날 다시 10불을 드리려고 했을 때, 갑자기 20불이 튀어나와 그것을 10불로 바꾸어 드렸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삶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함께 계신다. 그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우리 안에서 언제나 반짝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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