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 엄마, 밖에 좀 나와 보세요!”
부활절을 지내고 화요일 이른 아침 하성이를 학교에 라이드 해주려고 현관 문을 열고 나와 차고 문을 여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차고 옆 아주 자그마한 꽃밭에 심겨져 있는 아직 개화하지 않은 마른 꽃나무 수풀 사이에 한 마리 오리가 둥지를 틀고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리는 저를 보고 놀랐고, 저는 오리를 보고 놀랐지만, 부활절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밤 온도가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상황에서 손님으로 찾아온 오리가 꽃 수풀 사이에서 추위를 피했다는 생각이 드니 감사했습니다.
한 번은 토론토 대학교 미시사가 캠퍼스에 살 때, 산책 중에 정원에서 오리 가족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마리의 새끼 오리가 아내를 졸졸 따라왔습니다. 아내는 그 때를 생각하면서 “어머, 그 때 그 오리가 우리 집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라고 농담을 던집니다.
아내는 손님으로 찾아온 오리에게 정성스럽게 준비한 물과 잘게 썬 당근 그리고 몇 알의 쌀 알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리는 아내의 정성을 무시한 채 잔디 밭 풀에 관심을 보이다가 훨훨 날아가 버렸습니다.
하룻밤이 지나고, 수요일 아침에도, 목요일 아침에도 오리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가 집 오리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봄이 되어 짝이라도 찾아와 알을 낳고 새끼 오리가 태어나는 모습을 머릿속에서 상상을 하니 즐거운 마음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부활절을 보내면서 오리를 보니, 문득 교회사에서 이런 논쟁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부활절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순절(the Lent)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사순절은 교황 그레고리 1세(Gregory I: 재위 590-604)에 의해서 제정된 제도인데, 부활절 46일 전 수요일(Ash Wednesday)을 시작으로 주일을 제외한 사십일의 기간입니다. 그레고리 1세는 사순절 기간 동안 ‘피가 섞인 고기를 식탁에 올리지 말라’라는 규정을 만들어서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교회는 이 규정을 더욱 엄격하게 만들어서 중세 시대에는 사순절을 보내는 시간에 달걀과 치즈까지 금하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중세 시대의 서민들은 오리가 물속에 사는 물고기라고 우기면서 오리 고기를 먹거나, 심지어 우물에 사슴이나 닭, 비버를 던져 놓고 물 밑에 있는 어류라고 억측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사순절 기간 동안 소비하지 못한 달걀을 소비하기 위해서 부활절 주일에 달걀을 나누는 풍습도 생겼습니다.
예수님 당시 1세기 사람들에게 있어서 부활은 죽음이라는 첫 번째 단계를 거친 후, 다시 육체를 입고 살아나는 ‘죽음 이후의 삶과 그 이후의 단계’를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활의 개념은 세상의 마지막 날에 모든 의인들이 한꺼번에 육체적으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개념이었습니다. 유대교 안에서도 부활에 관한 논쟁은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마지막 날에 육체의 부활을 믿었지만,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부인했습니다(막 12:18; 마 22:23; 눅 20:27; 행 23:8).
따라서 초기 기독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라고 선포했을 때, 이 사실은 예수님의 영혼이 천국에 갔다거나, 예수님께서 다시 육체의 몸을 입고 살아났다는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부활의 개념을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에서 마지막 날에 일어날 종말론적 사건으로만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역사적 시점에서 끝이 아닌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신 ‘카이로스’(kairos)의 시점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관점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라고 선포합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예수님께서 세상의 진정한 ‘주님’(Lord)이심을 입증하는 사건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부를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실제로 만났고(고전 15:5-11), 빈 무덤이라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일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예수님은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될 수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된 것이 됩니다(고전 15:17).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능력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죽음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다고 선포하시기 위해서 살아나셨습니다(롬 4:25).
비록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지만,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요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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