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에서 콘도로 다운사이징을 하니, ‘왜 진작 안 했을까’ 싶을 정도로 편리하고 좋은 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불편해 진 면도 없지는 않았는데요. 단지 내 수많은 입주민과 함께 사용해야 하는 지하주차장이 그중 하나였습니다. 차고문이 열리면 여러 코너를 뱅글뱅글 돌아 지하로 내려가야만 지정된 내 자리에 당도할 수 있습니다. 바쁜 시간대에는 마주 오는 차량도 많고, 차 두대가 간신히 지나갈 좁은 길목을 기둥 사이를 피해가며 요리조리 지나야 합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조심스러워 마치 초보 운전자처럼 천천히 다니곤 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베테랑 운전실력을 뽐내듯 오는 차와 기둥들을 피해 한 손으로도 척척 핸들을 돌리며 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차시간도 눈에 띄게 단축되었지요. 자신감이 붙은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자만심’이라고 불러야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라디오를 틀어놓고 아내와 대화를 나누며 늘 그렇듯 여유 있게 주차구역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꺾이는 지점 우측에서 갑자기 젊은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빠른 속도로 튀어나와 제 쪽으로 급하게 꺾어 들어왔습니다. ‘아차’ 싶었지만 순발력을 발휘해 우측 공간으로 피하며 빠져 나가려 핸들을 꺾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부~욱’ 하는 소리와 함께 차 측면이 기둥에 긁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젊은 운전자는 이미 나 몰라라 가 버렸고, 차에서 내려 확인하니 뒷 문이 살짝 찌그러진 채 긴 스크래치가 나 있었습니다. 그 후 씁쓸한 마음으로 정비소 몇 군데를 들러보니 수천 불에 이르는 견적이 나왔습니다. 35년 무사고 운전경력에도 보기 좋게 흠집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가만히 곱씹어 보았습니다. 그 순간, 핸들을 꺾을게 아니라 정지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는 것이 후회’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며 겪는 모든 실패와 실수는 다른 한편에서는 배움을 낳는 법. 이번 일을 통해 잊고 있던 소중한 교훈 하나를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좁은 공간에서 양보 없이 눈 깜짝 할 사이에 달려온 그 젊은 운전자의 잘못도 있겠지만, 결국은 운전솜씨를 과신한 내 잘못도 컸습니다. 라디오 소리와 동승자와의 대화는 운전에 집중하지 못 하는 상황을 연출했고, 익숙함에서 비롯된 자만은 방심과 안전불감증을 불렀습니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겸허함’인데, 잠시 그것을 놓치고 살았던 모양입니다.
항상 다니는 길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젊은이들은 민첩하게 대응하고 털고 일어날 수 있지만, 나이든 이들에게는 골절 등 낙상사고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정말 우리 조상님들의 인생에 대한 지혜와 통찰이 아로 새겨진 말인 것 같습니다.
익숙함에 길들여진 잠깐의 방심과 자만은 언제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 대가는 종종 경제적인 그리고 건강상의 손실로 돌아오기 쉽습니다.
운전할 때뿐만 아니라 길을 걸을 때, 운동할 때, 그리고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언제나 겸허하고 자만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인생 후반전에 나를 지키는 ‘필수템’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꼭 필요한 ‘돈’과 ‘건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겸허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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