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조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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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조깅

한순자 2026-04-15 0

완전 은퇴를 앞두고 앞으로 그 많은 시간 무엇을 하며 보내야 잘, 유용하게 보낼 수 있을까 고심했다. 그래서 우선 교차로에 나오는 한인 커뮤니티에 무슨 프로그램이 있나 살펴보게 되었다. 그중 관심이 가고 좀 해보면 좋겠다 싶은 동호회를 찾아 방문을 했다. 어떤 분위기일까 찾아갔던 두 프로그램 역시 별다른 관심이나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우연한 기회에 등산 동호회를 알게 되었고, 난 운동을 좋아하는 성향은 아니긴 해도 자연을 벗 삼아 걷는 것, 산책은 좋아하니 그 동호회는 내겐 맞춤형이다 싶어 흔쾌히 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나가기 시작한 하이킹은 거의 2년 넘게 즐겁게 다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다른 일과 날짜가 겹쳐 몇 번 빠지다 보니 차츰 나가고 싶은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그러면서 언제 내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산행을 다녔나 싶게 거의 나가는 것도 잊고 있던 차에 또 다른 장소에서 조깅을 하는 단체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갈까 말까 미쳐 마음의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아는 친구가 그곳엘 가겠다는 문자가 올라왔다. 그래서 그럼 이때다 싶어 G Ross Lord Park에서 모임을 갖는 슬로우 조깅 팀과 합류하게 되었다. 

내가 나갔던 첫날은 인원이 20명은 조금 넘는 것 같았다. 회원들이 다 모이면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해를 바라보며 다 같이 야호를 외치고 세 줄로 서서 공원을 걷는다. 그동안 하이킹은 그냥 걷는 것이었다면, 슬로우 조깅은 보폭을 짧게 하면서 살짝살짝 뛰듯이 걷는 거였다. 게다가 걸으면서 단체 회장이 “슬로우 슬로우” 하고 선창을 하면 그다음 “백 세 건강, 싱글벙글, 대한민국, 구구 팔팔, 가슴 펴고, 머리 들고, 하나 둘 셋 넷”을 이어서 한다. 일정한 구령에 맞춰 걷다 보니 걷는 자체가 힘이 나면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도 하게 된다. 처음엔 걷는 게 갑갑해서 잰걸음으로 걷다가 다시 보폭을 줄여 걷기도 하다가 첫날은 별로 힘든 줄 모르고 점심 약속이 있어 일행을 뒤로하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그다음 날 보니 장딴지가 좀 당겨왔다. 그것은 그동안 걷기, 몇천 보 이상을 걸어도 없던 증세였다. 그 순간 이건 계속해야겠네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요즈음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하루하루가 참 소중하네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그것은 어제 건강했던 사람의 부음을 듣거나, 갑자기 다쳐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는 사람, 아예 운동 같은 건 생각도 못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건강도 건강할 때 지켜야!’ 하는 명제야 물론이지만, 걸을 수 있을 때 신바람 나게 걸어야지 하는 생각이 더 실감 나게 다가서니 말이다.

첫날은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어떤 분위기일까 탐색하는 날이었다면 두 번째 날은 그곳 분위기가 거의 파악이 되었다. 

첫날은 공원에 도착하니 커피와 빵이 준비되어 있었다. 난 아주 이른 시간이(오전 10시) 아니어서 집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가기도, 첫날부터 커피를 마시기도 뭣해서 그냥 지나쳤었다. 

그런데 둘째 날은 운동이 끝나고 출발지점에 도착하니 몇 사람이 가방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는 난 순간 재미있는, 묘한 즐거움, 호기심에 설레기 시작했다. 테이블 가까이 가니 아직도 김이 나는 옥수수를 한 통 쪄 온 사람, 차를 끓여 온 사람, 어떤 남자 회원은 과자를 담을 목기 그릇까지 준비를 해와서 그의 아내인 듯한 여자 회원이 과자와 사탕을 일일이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는 난 마음속에선 희열이 넘쳐흘렀다. 

사실 첫날 조깅을 끝내고 집에 오니 그날 찍은 인증샷이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뒤이어 어떤 사람이 왜 이렇게 귀찮게 문자를 보내느냐고 신경질적인 문자를 올렸다. 그 문자를 보는 순간 아니 7, 8십이 다 된 노인일 텐데 아직도 성질이 누그러들지 않았나 좀 불편하면서 어떤 사람일까 궁금한 마음이 되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성격이 그렇게 ”까칠하고 부정적이며 배려심이 없는 사람“은 단톡방에서 나가달라는 문자가 떴다. 다시 또 순간 재미있네! 이 나이에 건강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지만 즐겁자고 하는 운동인데, 운동이 문제가 아니라 성격이 까칠한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그런 사람은 분위기를 망치기 십상이니 단체에서 나가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두 번째 날 내심 궁금해서 단톡방에서 나가 달라는 문자를 올린 회원한테 가서 그 회원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렇게 까칠한 문자를 올린 사람은 카톡을 잘 할 줄 몰라 어떤 분이 일부러 그 사람을 찾아가 단톡방에서 ‘나가기’까지 해결해 주고 왔다는 말에 다시 또 놀랍기도 재미있어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젠 나이들이 있다 보니 모두가 각자의 시간이 소중하기도, 남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불편한 사람과는 취미활동은 물론이요, 얼굴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팽배해 있음을 알게 하는 날이었다. 

어느덧 슬로우 조깅 동호회에 나가는 지도 6개월이 되어 온다. 이젠 내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루틴이 되었다. 일주일에 월 수, 두 번 나가는 운동 시간이 너무 기다려진다. 

운동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는 회원들도 있지만 대부분 2차로 후드 코트로 간다. 이젠 그 분위기에 익숙해져 올 사람은 대충 다 온 것 같다 싶으면 총무가 커피를 사러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러면 한두 사람이 커피 시중을 같이 들기 위해 따라나서는 그들의 마음이나 뒷모습도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그렇게 회원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겁게 운동하고, 좋은 만남으로 노년을 외롭지 않게 따스한 정 나누며 보낼 수 있겠다 싶고, 모두 건강해서 사는 날까지 설레며 기다릴 수 있는 모임이 되어 삶의 활력을 잃지 않았으면 참 좋겠다.

늘 만나면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이 ‘우리 생애 가장 젊은 날’입니다를 되뇌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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