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완연해지면 우리가 자주 찾는 월마트나 달러라마, 쇼퍼스 드럭 마트의 계절 상품 코너에도 어김없이 변화가 찾아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화려하게 진열되어 있던 부활절 토끼 인형과 초콜릿은 어느새 뒤편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를 모종삽과 씨앗, 흙 포대 등 가드닝 용품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세상의 달력 속에서 부활절은 단 하루의 즐거운 주말 이벤트로 바쁘게 지나가 버린 듯합니다. 하지만 달걀 하나와 초콜릿 한 개로 부활절을 지나가는 게 좀 아쉽지는 않으신가요?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부활의 기쁨은 하루 만에 끝나는 일회성 행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기독교 전통에는 부활절 직후부터 성령강림절에 이르는 약 두 달간의 기간을 ‘기쁨의 50일’이라 부르며 지키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습니다. 간혹 이 절기를 현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유행이라 여기거나, 특정 교파만의 예식이라 오해하여 낯설어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기간은 초대교회 때부터 지켜져 온,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근원적인 절기 중 하나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는 40일의 사순절이 끝나면, 그보다 더 긴 50일 동안 철저하게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 기간에는 슬픔을 상징하는 금식을 금지했고, 심지어 회개를 의미하는 무릎 꿇는 자세조차 자제시킬 정도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죄를 잊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책감에 고개를 숙이거나 용서를 구하는 참회의 시간을 넘어, 이제는 죽음을 이긴 생명답게 당당히 서서 창조주가 주신 기쁨을 만끽하라는 권유였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긴 생명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서로 사랑과 감사를 나누며 배우는 벅찬 축제의 시간이 바로 이 50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부활의 기쁨은 우리가 마트에서 마주하는 가드닝의 원리와도 닮아 있습니다. 사실 가드닝은 즉각적인 결과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단단하게 굳은 땅을 일구고, 무거운 흙을 나르고, 보이지 않는 땅속의 변화를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부활의 기쁨 역시 이와 같습니다. 우리 삶의 문제가 마법처럼 한순간에 해결되지는 않지만, 내면의 토양을 고르고 희망의 씨앗을 심는 태도의 변화를 통해 서서히 싹을 틔우는 것입니다.
이 기쁨의 철학은 2천 년 전의 역사에만 머물지 않고, 오늘날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출근길의 고단함, 타국 생활의 끝없는 긴장감 속에서도 스스로 기쁨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오랜 지혜를 담은 성경의 전도서에는 "사람이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서 ‘낙’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땀 흘려 일한 뒤 마시는 시원한 물 한 잔 같은 일상의 소박한 즐거움을 뜻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소중히 끌어안고, 그 안에서 작은 은혜들을 발견해 내는 것이 바로 우리 일상에 부활의 생명을 채워가는 방식입니다.
이 50일 동안 우리는 거창한 잔치를 열지는 못하더라도, 스스로에게 혹은 이웃에게 기쁨의 문장을 건넬 수 있습니다. 언어의 장벽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직장인의 책상 위에도, 밤낮없이 가족을 위해 땀 흘리는 비즈니스 현장에도, 아이들을 돌보며 지친 부모들의 식탁 위에도 기쁨의 씨앗은 필요합니다. 고단한 퇴근길에 만난 버스 기사에게 건네는 밝은 인사, 뒷마당의 이름 모를 풀꽃을 대견하게 바라보는 마음, 혹은 이민 생활의 긴장 속에 잊고 지냈던 스스로를 위해 정성껏 차린 차 한 잔이 바로 우리 시대의 기쁨의 50일을 사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뒷마당에 꽁꽁 얼었던 땅을 일구고 새 씨앗을 심는 가드닝의 계절입니다. 이 봄날, 우리의 일상이라는 밭에도 기쁨의 씨앗을 심어보면 어떨까요? 달력의 부활절은 지났어도, 창조주가 허락하신 생명의 기쁨이 우리 삶의 현장 곳곳에서 파릇파릇 돋아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기쁨의 시간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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