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라는 악보로 연주되는 삶의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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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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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라는 악보로 연주되는 삶의 선율

김용원 2026-04-24 0

최근 저는 요크 대학교(York University)에서 열린 한 피아노 쇼케이스에 참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15명 남짓한 연주자들이 저마다 정성껏 준비한 곡들을 선보이는 자리였습니다. 관객석에 앉아 연주를 감상하던 중, 문득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익숙한 베토벤의 소나타가 흐를 때는 연주자가 악보와 다르게 연주하거나 건반을 잘못 짚는 실수를 할 때마다 제 귀에 즉각적으로 감지되었다는 점입니다. 제 귀에 이미 익은 멜로디였기에 ‘아는 만큼’ 들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나 리스트의 화려하고 난해한 곡들, 혹은 생전 처음 듣는 생소한 작곡가의 곡들이 연주될 때는 상황이 전혀 달랐습니다. 연주자가 실수를 해도 그것이 작곡가의 의도된 불협화음인지, 아니면 연주자의 실제 오류인지 분별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저 막연히 ‘참 어려운 곡을 잘 치시는구나’ 하며 무심코 박수를 칠 뿐이었습니다. 곡의 본래 의미와 정교한 악보의 흐름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 연주가 바르게 진행되고 있는지 판단할 기준 자체가 제 안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연장을 나오며 저는 이 음악적 경험이 낯선 이민 땅에서 인생이라는 무대를 채워가는 우리네 삶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훌륭한 연주자가 무대에 오르기 전, 악보의 음표 하나하나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몸에 익을 때까지 숙지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만약 연주자가 악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대에 오른다면, 그 연주는 결국 자신만의 고집과 오역으로 가득 찬 소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신앙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절대적인 표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악보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삶이라는 거대한 연주를 이어가면서도, 그 기준이 되는 성경의 바른 의미를 제대로 숙지하거나 공부하지 않은 채 무작정 건반을 누를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인생의 선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내 삶이 본래의 창조 목적에서 벗어나 엉뚱한 불협화음을 내고 있음에도 이를 깨닫지 못한 채 무감각하게 지나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토론토에서의 분주한 삶을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열심히 사는 것’ 자체를 ‘바른 신앙’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물론 이민자로서의 성실함은 귀한 자산입니다. 하지만 악보를 무시한 채 건반만 세게 두드리는 연주가 소음에 불과하듯, 기준을 모르는 열심은 자칫 방향을 잃은 질주가 될 수 있기에 경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익숙한 곡의 실수를 예민하게 알아채듯, 진리의 말씀이 우리 내면에 깊이 뿌리박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찾아오는 어긋난 신호들을 감지해낼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 신앙은 우리에게 바른 지식과 실천의 조화를 가르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정보를 넘어, 연주자가 악보를 손가락 끝에 새기듯 가슴으로 고백하고 삶으로 살아내는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깊이 묵상하고 깨달은 진리가 삶의 현장에서 적용될 때, 우리는 비로소 건강한 영적 분별력을 갖게 됩니다. 지금 내가 내딛는 이 걸음이 진정 선한 뜻에 합당한 순종인지, 아니면 교묘하게 내 고집과 욕심을 포장한 것인지를 식별해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인생의 성숙은 우리가 붙들고 있는 가치에 대한 깊은 이해와 비례한다고 믿습니다. 아는 만큼 행할 수 있고, 깨달은 만큼 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더 깊이 배우고 그 바른 의미를 나누는 일에 마음을 쏟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이라는 악보를 정교하게 읽어낼 줄 아는 이들만이, 광야 같은 이민 생활의 거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인생의 선율을 연주해낼 수 있습니다.


글을 맺으며 저는 조용히 저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목사인 나는 지금 내 삶의 연주가 말씀이라는 절대 기준에 충실한지 분별할 수 있을 만큼, 그분의 음성을 깊이 알고 있는가?” 익숙한 멜로디의 오음을 즉각 알아채듯, 말씀 앞에 서 있는 저의 매 순간이 그분의 뜻을 밝히 깨닫고 그 깨달음만큼 온전히 순종하는 진실한 연주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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