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1999 년. 지금도 가만히 눈을 감으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한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무렵 나는 대덕의 한 연구소에서 컴퓨터 관련 일을 하며 13 년째를 보내고 있었다. 일은 곧 나였고, 직장은 내 삶의 전부였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삶의 방식이라 믿었고, 다행히도 그 성실함은 주변의 인정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흔들림 없이 흘러가던 시간 속에 어느 날 세 갈래 길이 동시에 열렸다. 뜻밖의 선택의 순간이었다.
먼저, 세상이 Y2K 문제로 술렁이던 시절, 미국에서 근무할 인력을 찾는다는 제안을 받았다. 더 넓은 세상, 더 나은 조건, 그러나 낯선 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쉽게 결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어 비슷한 분야의 외부 업체에서도 더 나은 대우를 약속하며 손을 내밀었다. 평생을 함께할 것이라 믿었던 직장을 떠난다는 것, 그것 또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무게였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세 번째 길이 열렸다. 대통령 비서실에서 연구소로 인력 파견 요청이 들어왔다는 소식이었다. 업무 전산화를 위한 파견 대상자 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네 명 중 두 명을 선발한다는 면접 제안이었다. 직장을 떠나는 것도 아니고, 파견 형식이라면 부담도 덜했다. 나는 면접을 보기로 했다.
며칠 뒤, 생전 처음으로 청와대의 문을 들어섰다.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삼엄한 경비와 긴장감은, 그곳이 일상의 공간이 아님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면접은 평소 내가 가진 마음가짐과 기술적인면 등으로 담담하게 소화 했다. 그리고 돌아서 나오는 순간, 일주일 뒤부터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합격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깊은 고민에 잠겼다. 경제적 조건만 본다면 외국행이 가장 합리적이었다. 안정된 미래를 생각하면 이직 또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청와대 근무’라는 기회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어떤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명예였고,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시간의 초대장이었다. 대전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갈 때도, 올 때도 같은 길이었지만 마음은 전혀 달랐다. 버스 안에서 수없이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최종 결정을 하고 마음을 내려놓자, 이상하게도 어깨가 가벼워졌다. 잠시 들른 휴게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테이블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놀랐다. 그저 늘 그 자리에 있었을 산이, 그날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능선은 부드럽게 흐르고, 나무와 바위는 너무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아름답게 그려 냈을까?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요하고, 또 생생했다. 나는 그 풍경 앞에서 한동안 말을 잃었다. 이토록 아름다웠던 것을, 왜 이제야 보게 된 것일까. 다시 버스에 올라 창 밖을 바라보는 내내,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한 울림이 계속되었다. 아마 그날의 내 모습은, 바깥 풍경만큼이나 고요하고 맑았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결국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나는 그동안 일과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 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그날, 모든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태풍이 자나간 다음의 고요함이라고나 할까 정리된 마음이 하얗게 비워진 다음, 비로소 세상은 본래의 색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 나는 하나의 습관을 갖게 되었다. 여행을 할 때나, 산책을 할 때면 잠시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오직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려 노력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같은 길도 새롭게 보이고, 같은 풍경도 다르게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선택보다 더 값진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배우게 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남긴다. 혹시 누군가 지금 삶의 고민이나 갈림길에 서 있다면? 그 답은 멀리 있지 않고, 이미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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