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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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잃다

장동철 2026-05-01 0

작년 봄, 깊은 허무가 마음에 찾아 왔다. 연말과 연초를 교회사역으로 정신 없이 달려오다가, 잠시 쉬어 가는 봄을 맞았는데도, 마음에 설렘이 없었다. 모두가 봄이라고 들떠 있는데, 내 마음은 빈 깡통처럼 차가웠다. 몰래 뜯어 먹을 봄나물 생각에 가슴이 콩닥거리기라고 할법한데, 그런 콩닥거림도 없었다. 더욱 힘든 것은, 마음에서 주님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주님을 위해 열심히 달렸건만, 정작 그 끝에서 주님을 잃어 버린 것이다. 

교회를 개척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도, 비슷한 경험했다. 교회가 작아서 모든 일을 혼자 다 감당할 때이다. 그 때, 교회 형제와 대화하며 이런 말을 했다.  ‘정신 없이 사역하다가 하나님을 잃었어!’ 라고 말이다.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어린 딸래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었다.  “아빠,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했는데, 하나님을 잃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라고 말이다. 어린 딸래미로서는 절대 이해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난, 지난해 봄, 다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또 주님을 잃어 버린 것이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에서 마르다도 그랬다. 집체 찾아온 주님을 섬기겠다고 마르다는 동분서주하며 뛰어 다녔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마르다는 불평했다. 나는 이렇게 바쁘게 일하는데, 왜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 태평하게 앉아 있냐고 말이다. 그러나 주님은 바쁘게 일하는 마르다보다 주님곁에 앉아 있는 마리아의 손을 들어 주셨다.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마르다는 주님의 인정을 잃어 버렸다. 

바리새인들도 그랬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을 냈다. 일어나서 잠들기까지 종교적 열심으로 가득찬 삶을 살았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주님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셨다. 또한, “겉으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있다”고 하셨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낸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으신 것이다. 

나를 바리새인들과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결과가 비슷하다. 최선을 다했지만 하나님을 잃었다. 나를 마르다와 비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주님께서 내 삶을 옳다 하시는 것 같지는 않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하나님과 동행함이 없이 내 열심으로 사역을 한 것 같다. 그 결과,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주님을 잃어 버렸다. 

원인이 무엇일까? 두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일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다. 좋다고 생각되는 일을 다 하려고 하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두번째 라고 생각한다. 결과의 주권을 내가 쥐려고 한 것이다. 일의 결과가 하나님에 의해서가 아닌, 나의 열심에 달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늘 그렇게 하지 말라고, 설교도하고 글도 쓰지만, 정작 다시 내 열심을 의지한다. 내 열심이 아니면 결과도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끝에서 늘 주님을 잃어 버린다. 

많은 시간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시트콤을 찍는가?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결과 주님을 잃어 버린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욕심 때문이다. 주님에 대한 절대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반복적으로 코미디 같은 인생을 산다. 이런 나를 주님께서 여전히 긍휼히 여기시길 바라고, 다시 주님앞에 선다. 오늘도 기도가 나온다. ‘주님, 주님을 위해 열심히 달리다가, 주님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코미디같이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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