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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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오피니언 손영호의 여행 영화 음악 이야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1/3)
손영호의 여행 영화 음악 이야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1/3)

손영호 2026-05-01 0

■ 메디치가의 ‘파치 음모 사건’ 후 예술가를 활용한 외교전과 복수

   앞에서 살펴본 1478년 일어난 ‘파치 음모(Pazzi Conspiracy)’는 피렌체의 통치가문인 메디치 가를 몰아내고 피렌체를 교황령으로 귀속시켜 교황의 조카들이 피렌체 정권을 장악하게 하려는 권력쟁탈 목적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실패로 끝나자, 이를 방관, 조장한 교황 식스토 4세(Sixtus IV)와 메디치 가문 간에는 겉으로는 어색한 평화가 이뤄진 것처럼 보였지만 안으로는 서로 치열하고 힘겨운 투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식스토 4세 교황은 오늘날 이탈리아 리구리아 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프란체스코 델라 로베레(Francesco della Rovere, 1414~1484)였다. 로베레는 ‘참나무(oak tree)’를 뜻하니 가난한 농촌출신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프란치스코회 총장으로 있을 때인 1467년에 교황 바오로 2세(1417~1471)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되었고, 교황 선종 후 54일만에 후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사실은 선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밀라노 공작을 뇌물로 매수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생활이 엄격하고 의지가 강했던 그는 교황에 등극하면서 하루아침에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했다. 다른 여러 교황과 마찬가지로 식스토 4세 역시 가문의 번영과 부흥이 주요 관심사였으며, 친인척들을 등용하는 족벌주의 정책을 펼쳤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총 34명을 추기경에 서임했는데, 그 가운데 6명이 그의 조카였다. 파치 음모사건도 돈과 권력 등 세속화된 족벌주의 정책의 결과 중 하나였다. 돈을 물쓰듯 썼고 재원 마련을 위해 강제적 면죄부 판매, 성직매매 등을 일삼았다.

   그러던 중 교황은 너무 오래된 마조레 성당을 철거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시스티나 성당(Aedicula Sixtina)을 1481년에 완공하였다. 내부벽화 장식을 위해 예술가들을 수배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피렌체의 통치자인 로렌초(Lorenzo de’ Medici, 1449~1492)에게는 이것이 절호의 기회였다. 조상 대대로 후원해온 훌륭한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을 화해의 표시로 대거 로마로 보내 교황의 환심을 샀다.

   로렌초의 호의와 더불어 산드로 보티첼리와 피에트로 페루지노 등 당대에 내로라하는 예술가의 벽화 솜씨에 교황은 매우 만족했다. 그러나 로렌초의 속셈은 딴 곳에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파견한 예술가들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교황과 바티칸의 정세를 파악하는 데 활용하였다. 특히 파치 음모사건의 주범 중에 유일한 생존자이자 교황의 조카인 지 롤라모 리아리오 (Girolamo Riario) 백작의 동태를 지속적으로 파악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러던 중 드디어 1488년에 오르시니 가문(Orsini)을 충동질하여 지 롤라모 리아리오를 암살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10년 만에 동생 줄리아노의 원수를 갚았던 것이다.


■ 우피치 미술관의 개요

   필자는 30여 년 전에 유로패스를 이용한 배낭여행을 했었는데, 열차시간표 안내책의 피렌체―로마 구간 열차시간 오기(誤記)로 계획이 빗나가 피렌체(Firenze, 영어 Florence)는 두오모의 돔만 얼핏 보고 서둘러 로마로 갔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2024년 11월에 피렌체, 특히 우피치 미술관(Uffizi Gallery)을 제대로 볼 생각으로 지중해 크루즈 여행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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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외관.

   

 우피치 궁전(Palazzo degli Uffizi)은 토스카나 지역의 첫 대공이었던 메디치 가(家)의 코시모 1세(Cosimo I de' Medici, 1519~1574)가 자신의 권력의 심장부 안으로 행정 각료들을 모으는 ‘우피치(Uffizi)’ 즉 ‘집무실(Office)’로 사용하기 위해 화가, 조각가, 예술역사가인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에게 의뢰하였으나 완공을 못한 채 사망했다. 그후 디자이너, 엔지니어, 조각가인 부온탈렌티(Bernardo Buontalenti, 1531~1608)가 이어받아 코시모 1세의 아들인 프란시스코 대공(Francisco de’ Medici) 때인 1584년에 완공됐다. 

   1230년부터 1743년까지 5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문화•예술 분야 진흥 및 후원의 대명사로 불린 메디치 가는 대를 이어 미술품을 수집하였다. 메디치 가의 마지막 대공인 잔 가스토네가 죽은 후 유일한 상속녀이자 프랑스 로렌 가로 시집간 동생 안나 마리아 루도비카(Anna Maria Ludovica, 1667~1743)는 친정에서 상속받은 재산을 시집으로 가져가던 당시의 관습을 깨고 '가족 맹약'을 체결하여 이들 컬렉션을 피렌체 밖으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토스카나 정부에 기증했다. “위대한 예술품은 공공의 정신적 문화유산”이라는 인식을 일찍부터 했던 대인배다운 결단이었다.

   메디치 가의 컬렉션은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되어 1769년 공식적으로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고, 거의 1세기가 지난 1865년에 정식 미술관이 되었다. 피렌체 사람들은 우피치 미술관을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불렀다.


■ 우피치 미술관 전시실

   우피치 미술관은 베키오 궁전과 로기아 데이 란치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탈리아 최고의 미술관이자 세계 최고의 르네상스 미술관으로, 한해 20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아오는 인기 관광지 중 하나이다. 그러나 소지품 검사 등 입장 절차가 까다로워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사실 2,500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는 우피치 미술관을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나흘은 걸린다고 한다.

   현재 우피치 미술관에는 3층에 걸쳐 45개의 전시실이 있으며 회화 작품들의 컬렉션이 우수하다. 미술 작품에 이름표를 달기 시작한 최초의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으며, 작품들은 연대순 배치를 원칙으로 전시되고 있다. 'ㄷ' 자 모양의 회랑의 3층에 회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필자의 우피치 미술관 방문 목적은 사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의 원본을 보기 위함이었다. 보티첼리 작품 전시실(10~14전시실)은 가장 인기있는 방으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비너스의 탄생(The Birth of Venus)"은 보티첼리의 세계관이 모두 녹아 있는 작품이다. 우라누스 신의 생식기와 바닷물이 합쳐져 생겨난 거품 속에서 정신과 물질의 결합으로 탄생한 존재로 해석되는데, 이런 식으로 탄생한 이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보티첼리는 형식은 신화를, 의미는 종교를 빌려 미를 추구함에 있어 자유로움과 성스러움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데 성공한 셈이다. [註: 당시 피렌체 최고의 미인이었던 시모네타 베스푸치를 모델로 하여 그린 보티첼리의 최고의 명작으로 그리스•로마 신화에 바탕한 누드화다. 그러나 시모네타는 1476년 22세로 요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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