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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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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 (好意)

김윤규 2025-12-23 0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희곡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 중에서 5막을 보면 인간의 고통과 인내, 그리고 이성의 한계를 풍자하는 대화들이 등장합니다.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은 5막을 단순화시켜서 “인간은 육체적 고통 앞에서 이성적 태도나 철학적 위안이 무력해진다”라는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육체적 고통은 18-19세기 문학 작품에서 치통(toothache)과 연결되어 “A toothache would make a philosopher miserable”(치통은 철학자조차 비참하게 만든다)라는 문구로 반복적으로 인용되곤 하였습니다.


치통 앞에서 장사가 있을까요? 아마도 우리는 치통 앞에서 철저히 무너지고 힘겨워 할 것입니다. 저 또한 치통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미국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한국에서 치료한 왼쪽 어금니의 금니 표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통증에서 시작이 되었지만, 어느새 금니 표면에는 작은 구멍이 생겼고, 그 구멍 안에 음식물 찌꺼기들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송곳이 찌르는 것처럼 날카로운 치통이 신경을 따라 머리 끝까지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그 치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입한 유학생 보험에는 치과 진료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에, 저는 교회 성도님을 통해 2세 한국인 치과 선생님을 소개 받았습니다. 가능한 빨리 치과 진료를 받고 싶었지만, 치과의 문턱은 유학생인 저에게 높았습니다. 조심스럽게 치과에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받고자 했지만, 치과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상황을 보니, 치과 의사 선생님은 Pay Doctor였기에 가난한 유학생인 저는 실질적인 병원 주인인 사무장의 허락을 받지 않는 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했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유학생은 송곳으로 찌르는 치통을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음식을 먹으면 바로 양치질을 하고, 가능한 모든 단 음식을 피하고, 최소한의 음식을 먹으면서 치통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때, 치과에서 진료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치과에 도착했을 때 저는 알 수 없는 수많은 문서에 서명을 하고서야 임시방편으로 금니의 구멍을 메우는 치료를 받았습니다.


토론토에서도 치과에 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임시방편으로 치료한 금니가 다시 문제를 일으켰고, 제가 치과를 찾았을 때 의사 선생님은 “어떤 일 하세요? 육체적 노동을 많이 하시나요?”라고 질문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줍은 모습으로 “학생이면서 목사입니다”라고 대답을 하자, 의사 선생님은 모든 상황을 이해하신다는 표정으로 “아 예!”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의사 선생님은 재료비만 받으시면서 금니를 새로운 크라운으로 교체해 주셨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치석 제거를 하지 않았던 저에게 스케일링도 해 주시면서 “목사님, 많이 아프실텐데 잘 참으시네요!”라고 넌지시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저는 “아프다니요! 진료해 주시는 것 만도 얼마나 감사한데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상대를 향해 친절을 베푸는 행위를 ‘호의’(好意)라고 부릅니다. ‘호’(好)라는 한자를 보면, 여인이 어린 아들과 함께 있는 모습입니다. 결국 가장 아름다운 모성애(母性愛)의 마음(意: 뜻 의)으로 상대에게 대하는 태도가 ‘호의’입니다. 헬라어에서도 동일한 개념으로 다른 사람을 향한 ‘호의’를 설명합니다. ‘호의’와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헬라어 명사 중 하나가 ‘유노이아’(eunoia)인데, 이 명사는 ‘좋은’이라는 접두사 ‘유’(eu: good)가 ‘마음’(nous: mind)이라는 명사와 결합된 단어입니다. 헬라적 개념에서 ‘마음’이란 사람의 ‘기질’(temperament)이나 ‘성향’(disposition)이 자리잡고 있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좋은 것을 우리 마음의 기질이나 성향으로 가득 채울 때 상대에게 나타나는 것이 ‘호의’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절의 말씀을 보면,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같은 마음(eunoia)으로 무장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를 베드로는 육체의 고난을 받는 자는 죄를 단절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말씀을 통해 단순히 순교적 의미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경험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윤리적 행동 지침을 포함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육체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의 마음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입니다. ‘호의’란 상대를 향한 단순한 친절한 행동을 뛰어 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우리가 그 사랑을 타인에게 실천하는 행동입니다.


(벧전 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eunoia: 사랑의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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