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잘못된 이단 종파에 빠진 사람들이 한국 기독교 이단 상담소 협회에 소속된 교회를 통해 구원 상담과 반증 교육을 받고 개종하여 정통 교회로 돌아온 교회에 예배를 참석하였습니다. 그중에 한국에서 가장 많이 활동하는 이단 종파에 빠져 교주가 메시아라고 믿고 절대 복종하던 청년이 어느 목사님이 이단 종파에 대한 강의하는 목사님을 위협하는 일로 인해 경찰에 붙잡혔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신분과 행동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강의하시던 목사님은 그 청년을 경찰에 고발하거나 배척하는 대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었습니다. 그 청년은 자신이 보혜사라고 하는 이단의 교주를 버리고 회심함으로 신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으며, 지금은 테러 하려고 했던 담임 목사님의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위협을 가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의 인생을 다시 세워 목회자로 세운다는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 이야기는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용서와 사랑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주고 받는 말로 인해 부모와 자식, 교인들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 상처를 받습니다. 말로 인한 상처가 평생을 좌우하게 되어 그 사람을 보기 싫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말로 인해 큰 상처를 준 가해자는 자신이 상처를 준 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 억울함과 분노가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사로 잡혀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럴 만했으니 미워해도 된다”, “용서할 수 없다”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상처를 마음에 품고 평생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사랑의 본질이십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모든 사람이 내 제자인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며 아프게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이 성장하고 있는 사람이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가 되십니다(롬 5:5). 성령 충만한 사람은 사랑의 열매가 맺혀지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가장 첫 번째가 사랑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맺어지는 역사가 사랑입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고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동반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면 나도 당신을 사랑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사랑의 축소판입니다. 예수님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세리와 이방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일 3:15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미움을 단순한 감정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을 ‘살인’이라고 규정합니다. 이는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생명을 부정하고 관계를 끊어버리는 영적 태도를 가리킵니다. 미움은 상대를 죽일 뿐 아니라, 결국 미워하는 자신을 사망의 영역에 머물게 합니다.
용서는 상대의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며, 잘못을 정당화하는 일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기억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아야 할 죄인이었으며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의인) 영원한 생명을 얻은 천국 백성들입니다. 용서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며,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순종입니다.
벧전 3:9 에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인의 부르심은 보복이 아니라 축복이며, 미움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은 약함의 표현이 아니라, 복음을 믿는 용기의 증거입니다. 형제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뿐 아니라 오히려 축복을 빌어주는 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통한 구속의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오늘 이 시대가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복음의 증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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