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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설득하지 않고, 삶으로 스며든다"
에이든과 소니아, ‘살아내는 방식’으로 선교를 말하는 부부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0
말 대신 하루를 건네는 에이든과 소니아 부부의 조용히 스며드는 삶의 선교
[에이든 선교사. 말로 설득하지 않고 조용히 스며드는 삶의 선교]
[에이든 선교사. 말로 설득하지 않고 조용히 스며드는 삶의 선교]
이 이야기는 ‘선교’라는 단어로 시작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오히려 그 단어가 뒤로 물러난 자리에서, 사람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인터뷰의 첫머리에서 이들은 자신을 선교사라 소개하는 일을 조심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는 겸손이라기보다 오랜 생활에서 굳어진 습관 같은 것이 배어 있었다.
이름을 앞세우지 않고, 방식도 내세우지 않는 태도. 이 부부의 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흘러왔다. 조용히, 그러나 쉽게 흩어지지 않게.

소니아는 2010년 한국을 떠나 중앙아시아에서 5년을 지낸 뒤 T국으로 들어가 10년을 지냈다.
여러 나라를 거쳐온 그녀의 15년은 단순히 ‘머문 시간’이라기보다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삶과 겹쳐지며 ‘함께 살아낸 시간’에 더 가까웠다.
그곳에서 그녀의 하루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연속이었다.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나 언어를 가르치고, 약속을 지키고, 때로는 약속이 깨지는 날을 견디는 일. 종교는 늘 마지막에 있었다.
먼저 사람의 얼굴을 익히고, 말투를 배우고, 삶의 속도를 맞추는 일이 앞섰다. 관계가 충분히 무르익고 나서야,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왜 이렇게 사느냐'고. 그 질문이 나오기까지, 그녀는 오래도록 삶을 구워내듯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그게 소명이었다.

에이든은 그녀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 자리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민 와 자랐고, 신학교를 거쳤다. 토론토 다운타운에서는 난민들과 함께 먹고 자며 시간을 보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바로 쓸 수 있는 하나의 기술이었다.
빵을 굽는 손.
T국에서도 그는 그 손으로 시간을 구웠다. 반죽을 하고, 오븐을 열고, 갓 구운 빵을 나누는 일. 선교의 기술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같은 식탁을 여러 번 건너는 동안, 하루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것이 되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T국에서 만났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모인 자리가 아니라, 각자의 삶을 살아내던 한복판에서였다.
같은 시간을 살아오지 않았어도, 지금 같은 하루를 견디고 있다는 감각이 그들을 천천히 이어 주었다. 특별한 고백이나 극적인 사건보다, 함께한 시간들이 먼저 마음을 열었다. 결국 두 사람은 그 땅에서 가정을 이루었고, 아이를 낳았으며, 지금은 또 하나의 생명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결혼은 계획된 결론이라기보다, 함께 살아온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도착한 한 지점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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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과 소니아는 현지 사회에 필요한 일원이 되었다]

이들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종교적 선교 활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기 때문이 아니다. 말로 신념을 증명하거나, 신앙을 앞세워 자신을 설명하려 들지 않아서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겉치레도 아니고, 스스로를 꾸미기 위한 가식도 없다.
다만 이웃과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일이, 그들 삶의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부부의 시간은 ‘선교’라기보다, 오래 지속된 존중의 기록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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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선한 행위는 향기로운 선교가 된다]

이 부부가 ‘선교사’라는 이름을 앞세우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어떤 곳에서는 그 단어 하나가 벽이 되기도 하고, 도전이자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사회를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무례함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에서 ‘쓸모 있는’ 직업을 가졌고, 무엇보다 끝까지 사람으로 남기를 택했다.
먼저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고, 같은 불편과 같은 아픔을 견디는 사람. 신념은 강요나 주장으로 밀어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활 속에서,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향기로 드러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T국의 시간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테러와 정치적 혼란이 일상 가까이에 있던 시기였다. 소니아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마음이 가장 흔들리던 때”라고 말했다. 그때 그들은 확신보다 질문을 택했다. 믿음은 사람을 살리는가, 아니면 상처 입히는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질문을 놓지 않는 태도는 그들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밀어붙이지 않았기에, 오래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 이 부부는 캐나다로 돌아왔다. 아이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고, 곧 둘째도 태어난다.
에이든은 뜻밖의 고백을 했다. 선교지에 있을 때보다, 돌아온 지금이 더 어렵다고. 삶을 이어간다는게 결국 소명이며 향기로운 선교라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현장에서는 해야 할 일이 비교적 분명했지만, 여기서는 다시 방향을 그려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솔직함은, 그들을 이상적인 상징에서 현실의 사람으로 데려온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이야기는 더 진해지고, 더 사람의 향기가 난다.

이 부부가 속한 단체는 Interserve Canada 이다.
1852년 인도에서 시작된 이 공동체는 말보다 행동으로 이웃에게 다가가는 오래된 선교 방식을 이어오고 있다. 교육과 기술, 일상을 통해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 함께 살아가는 철학. 에이든과 소니아의 삶은 그 철학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증명할 뿐이다.
후원 또한 개인의 이름으로 모이지 않는다.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고, 함께 나눈다. 혼자 버티는 헌신이 아니라, 서로의 어깨에 기대는 삶. 그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하루가 끝날 때 이렇게 묻는다. '오늘, 우리는 잘 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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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내는 태도라는 것을 이들은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말로 설득하지 않아도, 삶은 스스로 신앙을 건네고,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에 닿는다.
에이든과 소니아의 하루는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그 하루들이 차곡차곡 쌓여,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 머문다. 때로는 투박한 선교의 언어보다 더 깊고, 더 진하게.

큰 소리 없이 곁에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 대신 하루를 건네는 사람들.
기독교를 알리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돕는 실천.
이 부부의 향기로운 삶은 그렇게 실천되는 선교다.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readailytoron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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