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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단단히 미래를 선명히"
토론토에 울려 퍼진 '문화 독립'의 함성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0
우리 아이들의 뿌리, '31불'의 기적으로 지켜낸다

3·1절 맞아 토론토 한인 사회 자발적 결집, '코리아 루츠 이니셔티브(KRI)' 캠페인 선포
'31불 챌린지' 통해 ROM 한국 전담 큐레이터(학예사) 영구직 기금 200만 달러 조성 박차
"뿌리를 단단히 미래를 선명히"… 단순 기부를 넘어 차세대 정체성 잇는 '문화 운동'으로 승화
(토론토)
1919년 3월 1일, 우리 선조들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그 준엄한 역사가 1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캐나다 토론토에서 '문화 독립'의 함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100년 전의 태극기, 2026년 토론토에서 '문화의 등불'로 다시 피어나다

3월 1일, 토론토의 차가운 공기를 녹인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문화의 뿌리를 지키겠다는 한인들의 뜨거운 다짐이었다. '코리아 루츠 이니셔티브(Korea Root Initiative, 이하 KRI)'가 주최한 삼일절 기념 행사는 단순한 기념식을 넘어, 이방인의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정체성을 연결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시작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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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KRI 회장. 사진=KRI

이현주 KRI 회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자신이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담담히 밝혔다. 그는 “32년 전 이 땅에 처음 왔을 때, 이곳에서 ‘한국’이라는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며, “시간이 흐른 지금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한국관의 존재와 그 소중함”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지켜낸 한국관을 훗날 손주들의 손을 잡고 가서 ‘할머니가, 엄마가 지켜낸 한국관이야’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현장의 분위기는 순간 숙연해졌고, 곧 박수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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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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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RI

이번 행사에는 다양한 세대와 단체가 함께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토론토 대학교 소속 한인 봉사 단체 KOVA(Korean Outreach Volunteer Association) 학생들과 공대한인동아리 학생들 역시 자리를 함께해 캠페인 취지에 공감과 지지를 보냈다.
젊은 세대의 참여는 응원이상의 의미가 있다. “문화와 정체성은 부모 세대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가 이어가야 할 책임”이라는 대학생들의 발언은 이번 운동이 일회성 모금이 아닌 장기적 문화 운동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각 분야에서 활약 중인 전문가들 전 세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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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스 컨비니언스' 출연 배우Jean Yoon 사진=KRI

이들은 "문화와 정체성을 잇는 일은 세대를 넘어 함께할 때 비로소 단단해진다"는 믿음 아래, 각자가 간직해온 한국 문화에 대한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깊게 확인했다. 특히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해 시작된 '31불 챌린지'는 누구나 부담 없이 참여하여 우리 문화유산을 스스로 지켜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자, 다음 세대에게 찬란한 꽃을 피워줄 거름이 되겠다는 부모 세대의 눈물겨운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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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 한국실의 큐레이터를 담당하고 있는 권성현 한국 미술사 박사. Youtube 캡처

박물관의 심장이 멈추지 않도록… '학예사 기금직' 신설의 절박함

KRI가 이토록 간절하게 마음을 모으는 이유는 캐나다 최대의 박물관인 로열 온타리오 뮤지엄(ROM) 내 한국관이 처한 위기 때문이다. ROM은 북미에서 유일하게 한국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북미 최대 규모의 한국 문화유산을 소장한 곳이지만, 지난 20여 년간 전담 학예사 없이 타국 전문가들의 손에 의해 관리되는 설움을 겪어왔다. 2022년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겨우 첫 한국 전담 학예사가 채용되었으나, 이 직책은 2027년 10월이면 계약이 종료되는 '시한부' 상태다.

전담 학예사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직원 한 명이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 유물이 다시 전담 관리자 없이 방치되던 어두운 시대로의 회귀이자, 세계인에게 우리 역사를 진정성 있게 알릴 창구가 닫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KRI는 학예사의 고용과 연구 활동을 영구적으로 보장하는 '기금직(Endowed Position)' 신설을 위해 200만 달러 조성이라는 거대한 여정에 나섰다. 이미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워싱턴 D.C.의 국립아시아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기관들은 현지 펀드레이징을 통해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해왔으며, 이제 토론토 한인 사회가 그 위대한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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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온타리오 박물관 내 한국실. Youtube 캡처

캐나다 유일의 한국 미술 상설 전초기지, ROM의 가치와 미래

ROM 한국관은 1999년 한인 동포 사회의 깊은 관심과 성원 속에 처음 뿌리를 내렸다. 현재 이곳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유물 대여와 보존 처리, 큐레이터 채용 지원 등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며 현지인들에게 한국 미술의 정수를 알리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전담 학예사의 기획력 덕분에 최근 몇 년간 한국실은 더욱 풍성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으며, 현지인들이 K-팝이나 K-드라마를 넘어 한국의 깊은 역사적 뿌리를 이해하는 소통의 장이 되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의 일시적 지원을 넘어선 현지 커뮤니티의 자립적인 힘이 필수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 역시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서 한국실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현지 교민 사회와 기업들의 관심과 지원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KRI가 추진하는 200만 달러 기금 조성은 한국 국제교류재단(KF)의 매칭 펀드와 결합하여, 향후 수십 년, 수백 년간 ROM에서 우리 문화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게 할 든든한 성벽이 될 것이다.

이방인의 땅에서 피워낼 자부심, 31불로 짓는 '우리들의 집'

타향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박물관의 한국관은 단순한 전시실 그 이상이다. 그곳은 우리 아이들이 "나의 뿌리는 어디인가"라고 물을 때 당당하게 손을 잡고 데려갈 수 있는 '영혼의 고향'이자 '자부심의 집'이다. 어제 삼일절 행사에서 모인 31달러의 정성들은, 우리 아이들이 이 땅에서 소수자가 아닌 문화적 자산을 가진 주역으로 성장하게 하겠다는 부모 세대의 가장 따뜻한 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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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에 서명하는 이현주 회장. 사진=KRI

"뿌리를 단단히, 미래를 선명히"라는 구호처럼, KRI의 이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토론토, 쏜힐 등 광역 토론토 지역 곳곳에서 이어질 이 '문화 독립운동'이 2027년 영구 학예사 직위 확보라는 결실을 보게 될 때, 우리는 100여 년 전 선조들이 그러했듯 다시 한번 뜨거운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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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RI

문화유산은 지키는 자의 몫이다

해외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뿌리'에 집중해야 한다. 대중문화의 화려함 뒤에는 이를 지탱하는 유구한 역사의 품격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ROM 한국관의 학예사 직위를 영구히 지켜내려는 KRI의 활동은 단순히 한 명의 전문가를 고용하는 차원을 넘어, 캐나다 사회 내 한국 문화의 지배력을 영속화하는 전략적 승부수다. 정부의 지원금은 마중물이 될 수 있지만, 그 물줄기를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은 결국 그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우리 교민들의 손길이다. 31달러라는 작지만 위대한 시작이 토론토를 넘어 전 세계 한인 사회에 어떤 울림을 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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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론토총영사관 임광한 문화부영사. 사진=K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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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와 봉사자. 사진=KRI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readailytoron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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