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나는 오래 전 한 노인을 보고 사람의 가치는 겉모습으로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적이 있다. 그분은 내가 경영하던 회사 근처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분인데 내 인생길을 바로 잡아 준 어른이다.
음력설을 전후해서 나의 아들이 서울대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다는 통지서를 받았을 때였다. 정월 초순부터 엄청난 복덩이가 굴러들어 왔으니 조상님께 감사를 올리고 아들을 가르쳐준 선생님께도 인사를 드렸다. 온 천지가 다 내 세상인 양 기쁨을 억제치 못하고 아무에게나 자랑하고 싶었다. 어서 빨리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우리 집 시계는 경전선 화물 열차처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음이 들뜨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자랑하고 싶어서 날이 밝자마자 찰떡을 대량으로 주문해 온 천지에 나눠주었다. 그렇게 방방 설치는 나를 보고 그 노인이 떡을 돌리지 말라고 말렸다. 좋은 일이 있다고 해서 날뛰고 다니면 복이 깎인다는 충고였다.
하지만 나는 들은 척 만 척 계속 설치고 다녔다. 그때 아차 하고 순간적으로 뭔가 스치는 것이 있었다. 구두 미화원 충고라고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번쩍 든 때문이다. 결국 떡을 돌리지 않기로 마음먹고 부랴부랴 나머지 주문량을 모두 취소했다.
알고 본즉, 노인 가족은 대단했다. 서울대학교 동문이 세 사람이나 되었다. 맏아들은 그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나라 최고기업이라는 S 전자주식회사 전무이사가 되었고 며느리도 그 대학 교수라고 했다. 그뿐인가. 손자도 최고 점수를 받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생이 되었단다. 이런 엄청난 자랑거리가 넘쳐나는 가정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자랑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뭔가. 내 아들이 그렇다고 해서 고무공처럼 방방 날뛰고 다녔다. 그것이 너무나 부끄러워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은 충격을 받았다. 그분은 흙 묻은 손님 구두를 닦으며 살아가지만 인간의 도리,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경 알처럼 알고 있었다. 어찌 인생의 선배요 멘토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때는 찰떡을 이웃에 돌리면 왜 안 되는지? 그걸 나는 알지 못했다. 서울대학교는 합격하는 학생보다 불합격하는 학생 숫자가 더 많을 것이다. 입학시험에 합격한 강자가 날뛴다면 불합격해서 실의에 빠진 약자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나는 뒤늦게 후회했다.
내가 인생을 제대로 살았더라면 그만큼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도 넓고 생각도 깊었을 것인데 말이다. 더 높고 아름다운 세상을 볼 줄 아는 혜안慧眼을 기르지 못했다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새해를 맞은 지도 한참 지났다. 먼 산에 오색영롱한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찬란한 봄이 오면서 뜰에서는 목련이 몸을 풀려고 준비한다. 바로 복된 한 해를 예고하는 것 같다. “잘 영근 가을 열매를 다오, 그럼 온 우주를 품은 새싹을 너에게 주겠다.”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문득 어느 계절에 비해 더 눈부신 초봄이라는 것도 느낀다.
이 멋진 계절에 내 인생의 멘토이신 그 어른은 어디에서 살고 계시는지. 은퇴 후 편안히 살고 있다는 소식은 접하고 있었다. 댁으로 찾아가 정중히 세배라도 올리고 싶다. 하도 헛헛한 마음이어서 이마에 손을 얹고 그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뭉게구름 두둥실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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