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틀 나이트 뮤직> 관람기, 그 너머의 다짐
지난 일요일, 뮤지컬 <리틀 나이트 뮤직(A Little Night Music)>을 관람했다. 20세기 초 스웨덴 상류사회, 그 우아한 왈츠의 리듬 뒤에 숨겨진 인간의 위선과 엇갈린 욕망을 날카롭게 파고든 이 작품은 시종일관 관객을 긴장케 했다. 마치 소설 <전쟁과 평화> 속 나타샤의 무대를 연상케 하는 화려함 속에서,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의 치밀하고도 까다로운 선율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무대를 압도하는 한 청년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은 벅찬 감동이었다. 그 음악을 빛내는 주인공은 바로 한카문화예술원(KCCNAC)이 자랑하는 인재이자, 천만냥의 보석 같은 목소리를 가진 임이삭이었다.
무대의 막이 내릴 때마다 나의 머릿속은 어느새 본 공연 **<조선에 등불을>**의 무대로 전환되고 있었다. 배우들의 동선과 음악의 흐름을 계산하느라 마음이 바빴던 것은 그 중심에 당연히 임이삭이 있기 때문이었다. 극 중 <레미제라블>의 에포닌이 부르는 ‘On My Own’처럼 가슴 저미는 선율이 흘러나올 때면, 그 애절한 멜로디는 관객의 심장을 여지없이 울컥하게 만들었다. 공연이 끝난 후, 나는 그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거창한 허풍을 떨었다.
“오늘은 꽃다발로 축하하지만, 다음에는 꼭 네 손에 트로피를 쥐어줄게.”
어쩌면 허풍쟁이처럼 보였을지도 모를 그 약속은, 사실 나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이었는지도 모른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빈 주머니로 저 넓은 무대를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하면서도, 마음만은 이미 다음 무대의 영광을 꿈꾸고 있었다.
공연장의 길은 눈에 익어 돌아오는 길에는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공연의 여운과 우리가 올려야 할 <조선에 등불을>의 구성으로 가득 찼다. 일요일 아침 도착한 120개의 악보 뭉치가 내는 환청과 무대 위 배우들의 움직임이 뒤섞여 머릿속을 휘저어 놓았다. 그 생각에 너무 깊이 빠졌던 탓일까, 고속도로 진입로를 그만 놓치고 말았다.
‘어디로 가든 길은 연결되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무작정 남쪽이라 믿고 달렸지만, 지도는 정반대인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길을 잃고 헤매다 마주한 것은 얼어붙은 겨울 호수와 울퉁불퉁한 언덕길이었다. 나는 이 뜻밖의 길에서 낭만을 즐기기로 했다. 고속도로의 속도감 대신 처음 만나는 비포장도로와 외길의 정겨움을 택한 것이다. 1시간이면 갈 길을 2시간이나 걸려 돌아왔지만, 그 대가로 얻은 내 안의 평화는 심코 호수의 꽁꽁 얼어붙은 얼음처럼 투명하고 단단했다. 우리가 가야 할 예술의 길이 바로 저 얼어붙은 호수처럼 차갑고, 언덕처럼 굴곡진 길이 아닐까? 탄탄한 예술적 완성도란 험난한 길을 통과할 그 빛이 발하는 것이라고 다시금 되새겼다.
임이삭에게 약속한 트로피는 단순한 상패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이자, 천만냥의 가치를 지닌 그 목소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영광의 상징이다. 그 약속이 허언으로 끝나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120개의 악보를 펼치며 조선의 등불을 준비한다. 길을 잃어도 목적지는 분명하다. 이제 무대 위에서 그 진가를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장한 마음으로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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