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대 사회학자 "여성들에게 재택근무는 자율 아닌 '24시간 대기' 사슬"
공간 경계 허물어지며 스트레스 호르몬 급증… 가사와 업무 사이 '번아웃'
"타인의 휴가 위해 내 시간 희생"… 원격 근무가 드러낸 직장 내 불평등
[Unsplash @Jess Morgan]
(캐나다)
원격 근무가 주는 '유연함'의 환상 뒤에 가려진 여성들의 가혹한 현실이 토론토대학교 사회학자의 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스콧 시먼 교수는 집이 사무실로 변하면서 여성들이 겪게 된 '경계의 실종'과 '심리적 압박'을 심도 있게 분석했다.
"퇴근 없는 삶"… 밥상머리까지 침범한 업무 소음
'롤라'의 사례는 원격 근무의 물리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녀는 식탁에서 업무를 보며 옆방 남편의 통화 소음을 견뎌야 했고, 동료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과거 '사무실을 떠나 집으로 간다'는 명확한 공간적 단절이 사라지면서, 집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닌 또 다른 업무 연장선이 되었다.
"상사의 이메일 한 통에 심장 박동 급증"
심리적 스트레스도 심각한 수준이다. 홍보 전문가 '펄'은 퇴근 시간 이후 날아오는 상사의 이메일이 신체적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한다고 토로했다. 법률 사무원 '아이린' 역시 "과거엔 퇴근이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눈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가 업무 시간"이라며, 휴가 중에도 업무 연락에 응해야 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원격 근무가 수면 위로 올린 '권력의 불평등'
시먼 교수의 연구는 원격 근무가 직장 내 보이지 않는 계급 구조를 어떻게 강화하는지도 조명했다.
고객이나 상사의 휴가를 위해 하급자가 야근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가 재택근무 환경에서 더욱 고착화되었다. 게다가 자녀가 있는 동료의 업무 공백이 미혼 직원에게 전가되는 등, 구성원 간의 새로운 갈등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유연근무제, '장소의 자유'만큼 '시간의 권리' 보장되어야"
원격 근무는 우리에게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지만, 역설적으로 '언제든 일하지 않을 자유'를 빼앗아갔다. 특히 돌봄과 가사 노동의 부담이 여전히 큰 여성들에게 집과 직장의 통합은 이중고를 의미한다. 시먼 교수의 연구는 "내 시간은 타인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만 존재한다"는 현대 노동의 서글픈 단면을 보여준다. 이제는 '어디서 일하느냐'보다, 업무가 개인의 삶을 얼마나 깊숙이 침범해도 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