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마음의 상처로 여겨졌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심리적인 증상에 그치지 않고, 우리 몸 전체에 뚜렷한 생물학적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최근 국제 학술지 '분자 정신의학(Molecular Psychiatry)'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일상적인 혈액 검사만으로도 PTSD 여부와 그로 인한 신체적 영향을 감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심리적 장애 넘어 전신 질환으로 확인된 PTSD
매스 제너럴 브리검과 하버드 T.H. 찬 공중보건대학원 연구진은 24,000명 이상의 성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PTSD가 면역 체계, 간 건강, 심혈관 대사 등 여러 장기 시스템에 광범위한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를 이끈
영아 리(Younga Lee) 박사는 "PTSD는 단순한 정신 질환이 아니라 전신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라며, 혈액 속 생체지표를 통해 적기에 개입함으로써 만성 질환의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혈액이 말해주는 16가지 생물학적 신호
연구팀은 유전자 정보와 전자 건강 기록을 결합하여 PTSD와 밀접하게 연관된 16가지 핵심 생체지표를 식별했다. 주요 지표는 다음과 같다.
• 대사 건강: 콜레스테롤 및 혈당 수치 변화
• 간 기능: 알부민(간에서 생성되는 단백질) 및 빌리루빈 수치의 이상
• 면역 및 혈액: 적혈구 및 백혈구 수치의 변동
이러한 수치들은 표준 건강검진에서도 흔히 쓰이는 항목들이다. 즉, 새로운 검사법을 개발할 필요 없이 기존의 혈액 검사 데이터만으로도 환자의 PTSD 상태와 그로 인한 신체적 위험도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임상적 가치가 매우 높다.
PTSD 환자의 만성 질환 발생 기전 규명
그동안 PTSD 환자들이 심장병이나 대사 장애와 같은 만성 질환에 더 취약하다는 통계는 있었으나, 그 직접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 연구는 PTSD가 신체 마커들을 직접 변화시키고, 이것이 결국 질병으로 이어진다는 인과관계를 시사한다. 이는 정신과적 치료뿐만 아니라 내과적인 통합 관리가 PTSD 치료의 필수적인 부분임을 입증하는 결과다.
'보이지 않는 고통'의 수치화, 편견의 벽 허무는 계기 되길
PTSD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상이 없어 환자들이 주변의 오해나 편견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연구 결과는 PTSD가 엄연히 신체에 각인된 '생물학적 질환'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연구를 기반으로 한 혈액 기반 진단 모델이 도입된다면, 상담을 꺼리거나 증상을 숨기는 환자들을 조기에 발견해 더 나은 치료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병을 과학으로 진단하는 이번 성과가 환자들의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readailytoron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