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 위험 1위 지역 ‘락클리프-스마이드(Rockcliffe-Smythe)’ 주민들, 폭우 속 집결… 배수 펌프 가동 시연 등 실전 대비
시·연방 3억 달러 투입 인프라 개선 약속했으나 공사 완료 전 ‘대홍수’ 우려… 전문가들도 정책 실효성 지적
"우리에게 남은 건 우리뿐"… ‘블랙 크릭 홍수 연합’ 결성, 왓츠앱(WhatsApp) 알람 그룹 및 비상 대응 노하우 공유
[지하실 배수 펌프 정비 모습. Youtube @Inspiring Builds캡처]
(토론토)
"지하실 침수만 네 번"… 베테랑 주민이 전하는 '살아남는 법'
토론토에서 홍수에 가장 취약한 동네로 꼽히는 락클리프-스마이드의 토요일 오후,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주민 프랑코 루폴로는 흠뻑 젖은 패딩 점퍼 차림으로 이웃들 앞에서 발전기를 돌려 배수 펌프(Sump pump)를 가동하는 시연을 보였다. 정전 상황에서도 지하실 물을 빼내는 법을 직접 가르치기 위해서다. 그는 "내 지하실은 이미 네 번이나 잠겼다"며 침수 대비의 절박함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이날 행사는 ‘지하실 침수 인식 제고를 위한 오후’라는 이름으로 열린 일종의 블록 파티였다. 하지만 분위기는 축제보다 생존 훈련에 가까웠다. 주최 측은 폭우가 쏟아지자 행사가 취소될까 걱정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자기 집 물을 퍼내러 달려가야 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주민들은 텐트와 우산 아래 모여 서로의 침수 경험을 공유하고, 정전 시 대응법을 경청했다.
3억 달러 예산도 못 믿어… "공사 끝나기 전에 큰 물이 먼저 올 것"
토론토 시와 연방 정부는 블랙 크릭(Black Creek) 주변 홍수 방지를 위해 약 3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개선 사업을 약속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시선은 냉랭하다. 수자원 공학 전문가 팀 메루 등은 시의 접근 방식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해왔다. 특히 주민들은 대규모 공사가 마무리되기 훨씬 전에 기록적인 폭우가 다시 닥칠 것이라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행사를 기획한 ‘블랙 크릭 홍수 연합(Black Creek Flood Coalition)’의 사라 맥비는 "현재 우리에게 있는 건 이웃들뿐"이라고 말했다. 그녀 역시 수차례의 침수와 하수 역류를 겪으며 이웃들에게 배수 펌프 고르는 법, 오물 청소법, 보험 청구 노하우를 배웠다. 이제는 그 지식을 마을 전체로 확산시켜 ‘빅 워터(The Big Water)’가 닥칠 때 인명 피해를 막겠다는 각오다.
"행정의 공백을 메우는 이웃들의 연대"
수억 달러의 예산안이 책상 위에서 논의되는 동안, 락클리프-스마이드 주민들은 마당에 아기용 풀장을 갖다 놓고 배수 펌프 가동 연습을 하고 있다. 이는 기후 위기 시대에 도시 인프라가 시민의 안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행정 공백’의 모습이다.
"홍수 중에는 샤워나 식기세척기를 돌리지 마세요"라는 손글씨 포스터와 주민 왓츠앱 그룹은 따뜻한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공공 안전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를 반증한다. 인프라 개선도 중요하지만, 당장 이번 여름을 버텨야 하는 주민들을 위해 시 당국은 배수 펌프 설치 보조금 확대나 비상 발전기 지원 같은 더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생존형 대책’을 병행해야 한다.